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에 대해 중국은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하루가 다르게 반발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지난달 8일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공개적으로 북한을 두둔하는 동시에 한국을 ‘미국이 놓는 바둑돌’로 취급하면서 굴복시키려 맹폭격을 퍼붓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人民)일보는 5일자 사설을 통해 한반도에 배치될 사드 또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군사 전략적 우위를 노리는 것이라면서 이는 ‘녹색 파와 하얀색 두부가 선명하게 구별되는 것처럼 분명하다’는 중국의 고전 표현까지 인용했다.
런민일보 논조는 사실상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생각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파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런민일보는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동란(動亂)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을 폈다. 이 보도는 당시 장쩌민(江澤民) 정권이 학생운동을 강경 진압하는 전환점이 됐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크게 세 단계로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정부가 직접 나서거나 공식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관영 매체를 동원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각급 단체들이 ‘눈치 보기’를 하도록 만드는 1단계다. 주로 문화와 인적 교류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의 한류(韓流) 스타 박보검 씨 광고 비난이 대표적이다. 관영 환추(環球)시보 인터넷판 환추왕도 “박보검이 중국을 모욕하는 광고를 찍었는데 누구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여론조사를 하며 반한(反韓)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21일로 예정된 그룹 스누퍼의 둥팡(東方) 위성TV 음악 프로그램 ‘AIBB’ 출연과 이달 말 베이징 패션 브랜드 행사 참석도 전격 취소됐다.
중국 외교부가 후원하고 산둥(山東)대 중한관계연구센터와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가 주최해 27, 28일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에서 개최하려던 ‘한중청년학자포럼’도 무기한 연기됐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최근 한국 마스크팩에 불량품이 많다는 내용의 고발 프로그램을 장시간 방영하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직간접으로 나서면서 경제와 무역, 관광 분야에서 차단막을 치는 2단계가 실행되면 한류에 그야말로 ‘한류(寒流)’가 덮칠 가능성이 크다. 당국이 중국인 관광객(游客·유커)의 한국행을 막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한 여행사는 고객으로부터 다음 달로 예정된 5000명 규모의 기업 인센티브 관광을 취소하고 목적지를 일본이나 대만으로 바꾸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3단계는 정치 외교 군사 분야에서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는 순서다. 베이징 소식통은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했을 때 중국이 취한 가장 큰 조치는 군사 고위층 교류 중단이었다”라며 “(한국과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먼저 군사 분야 인적 교류 중단 등의 조치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고위 정치인 교류 중단이나 군사 훈련을 통한 무력시위 등이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미가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효과를 떨어뜨리는 작업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도 과도한 실력 행사가 한국을 미국과 일본 편으로 더욱 다가가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행동에 나설지 현재로선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5일 “한국이 사드 정보 공유 등을 통해 일본에 기우는 것은 한미일 3각 동맹을 강화하게 된다”며 “이는 중국에는 ‘전략적 악몽’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전문가 분석이 있다”라고 전했다.
군사 전문가이자 과거 중국 제2포병(전략 핵 미사일 담당) 부대 교관을 지낸 쑹중핑은 “한일 협력이 기본적인 정보 교류부터 시작해 좀 더 광범위한 정보 공유로 이어지고 멀리는 군사동맹으로 진행될 수 있다”라며 “이는 지금까지의 미일, 한미 양자 동맹에서 한미일 3자 동맹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현재 중국은 사드 체계 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에게 결심을 바꿀 것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한 중견 외교관은 “한중 관계에서 사드와 같은 이슈가 잇따라 불거질 텐데 그때마다 압박에 못 이겨 결정을 바꿀 경우 중국은 한국을 얕잡아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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