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애국과 매국이 갈리는 뜨거운 여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0일 03시 00분


더불어 초선의원들의 訪中
외세로 사드 배치 뒤집겠다는 김자점 류의 더러운 事大
공화국에 대한 매국행위… 공화국 지탱하는 힘은 애국심
“내 뒷마당도 좋다” 설득하려면 오직 애국심만으로 가능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작은 나라는 사대(事大)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사대를 현대적 용어로 큰 나라와의 동맹으로 정의한다면 작은 나라의 존립은 예나 지금이나 ‘자주국방’보다는 큰 나라와의 동맹에 의해 결정된다.

사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나쁜 사대가 있다. 조선시대 인조반정의 주역으로 권세를 누렸던 김자점이란 자가 있다. 친청(親淸)파인 그는 효종이 즉위 후 송시열을 중용해 북벌(北伐)을 추진하자 좌천됐다. 그러자 그와 아들 김식은 효종과 송시열이 북벌을 추진한다고 청에 밀고했다. 청을 움직여 조선 조정에 압력을 가하려 한 김자점 부자의 행태야말로 더러운 사대라고 할 수 있다.

북벌론은 실제 북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내적으로 청에 대한 복수(復讐) 의식을 보존하면서 자강(自强)을 모색하는 슬로건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 어찌 됐건 북벌론을 둘러싼 싸움은 조선 땅에서 조선인끼리 해야 할 것이었다. 북벌론이 또 다른 호란을 불러오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했다면 최소한 청에 고자질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에서 권세를 누릴 대로 누린 김자점 부자가 자기 살겠다고 한 짓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이 중국을 방문했다. 지금 중국에서 관변 학자의 뻔한 얘기를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납득했을지 모르겠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와 자매지들이 일제히 사드 배치를 극렬히 비판하는 가운데 관영 매체인 환추시보는 더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방중을 1면 톱으로 보도했다. 그것도 이용해 먹기만 했을 뿐이다. 의원들에 대한 접대 수준은 급을 못 맞춘 사신을 대하는 하대(下待)에 가까웠다. 겨우 초선이냐, 오려면 문재인 전 대표라도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더민주당은 비겁하게도 사드 배치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정당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중한 의원들은 중국에 갈 게 아니라 당을 움직여 사드 배치 반대 당론부터 정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여론을 얻기 위해 싸워도 싸워야 한다. 사드 배치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결정은 우리가 한다. 중국의 힘을 이용해 우리 정부에 압박을 가하려는 태도는 김자점 부자의 행태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더러운 사대가 어디 김자점뿐이었겠는가. 인조 때 이괄과 함께 난을 일으켰던 한명련의 아들 한윤은 난이 실패한 후 후금(청의 전신)으로 피신해 광해군의 밀명으로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에게 “강씨 일족이 다 죽임을 당했다”고 무고하고 누르하치에게는 “민심이 인조를 떠나고 있다”며 조선 침략을 부추겼다. 한윤의 무고와 선동은 정묘호란의 원인이 됐고 기구한 운명의 강홍립은 오랑캐의 앞장을 서야 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조선이야 한 사람이 곧 나라인 왕조국가였다. 임금 눈 밖에 나면 목숨도 부지하기 힘드니까 자기들 살겠다고 그랬다고 치자.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다. 더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행태는 임금에 대한 배신행위도 아니고 종묘사직에 대한 배신행위도 아니고 국민 모두에 대한 배신행위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군주정은 명예, 독재정은 공포, 공화정은 덕성을 기초로 유지된다고 했다. 공화국의 덕성은 공화국에 대한 사랑, 애국심이다. 군주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통치하고 독재자는 공포를 이용해 통치하지 국민의 애국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화국은 애국심 없이 유지될 수 없다.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메달을 땄다고 기뻐하고 박수 치는 것은 값싼 애국이다. 그러나 군대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황금 같은 청춘 2년을 보내는 것은 비싼 애국이다. 성주 주민만이 아니라 돈 없고 백 없는 국민 대부분은 다 이런 애국을 해봤으니까 이해할 것이다.

한반도 어딘가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다면 그 사드는 자기 집 뒷마당에도 배치될 수 있다고 각오해야 애국이다. 하필 성주로 결정돼 선조부터 살아온 고향 땅을 내놓아야 하는 성주 주민을 무엇으로 설득할 수 있겠는가. 돈을 퍼준다고 될까. 오직 애국심밖에 없다. 성주 주민이 그런 애국심을 보여준다면 공화국 대한민국은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사드 배치#더민주#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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