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이정현 신임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새 지도부 8명과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했다. 박 대통령은 이 대표가 좋아하는 냉면을 준비해 예정 시간을 20분 넘긴 1시간 50분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오찬이 끝난 뒤에는 이 대표만 따로 불러 25분간 독대함으로써 친박이자 참모 출신인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꼭 2년 전 새 지도부와의 첫 오찬 때 김무성 당시 대표와 5분간 독대한 것과 비교되는 장면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수차례 강조한 것은 당의 화합과 당정청이 하나 되는 일이었다. 지난 2년간 비박(비박근혜) 출신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 인해 법안 처리와 국정 운영이 청와대 소원대로 되지 않았다고 믿는 대통령으로선 “당정청이 하나가 돼서 나아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이 대표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김영란법 같은 국정 현안을 박 대통령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시급한 민생현안을 논의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대통령이 선물처럼 제시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은 첫 당청 회동이 아니어도 마땅히 고쳐져야 할 일이다.
국민이 대통령과 새 여당 대표의 첫 회동에서 원했던 것은 법안 처리 촉구와 화답은 아니었다. 4·13총선 참패 이후 첫 회동인 만큼 이 대표는 집권여당의 오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대통령에게 상기시키며 몇몇 장관과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의 교체를 요구해야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개각에서 탕평인사, 균형인사, 능력인사, 소수자 배려 인사에 대해서도 ‘늘 그렇게 해오셨지만’ 반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비서 출신 대표가 대통령 눈치를 본다는 인상을 남겼다.
청와대가 여당을 하청 기관처럼 취급해 온 당청 관계에 대해 이 대표는 “수평적인 질서가 시대정신이고, 새누리당은 당 운영도 수평적으로 하겠다”면서도 정작 당청 관계도 그래야 한다는 말은 꿀꺽 삼켜버렸다. 회동이 끝난 뒤 이 대표가 “정치인 박 대통령에게 본받고 싶은 것은 일관성”이라고 말한 것도 대통령의 ‘마이 웨이’식 국정 운영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린다.
여당 대표가 꼭 공개적으로 청와대와 맞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혁’을 내걸었던 신임 대표마저 국정 기조의 변화를 대통령에게 촉구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당정청은 한 몸’이 돼야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당정청 간 ‘신(新)밀월시대’가 제2의 친박 전성시대를 여는 데 그친다면 새누리당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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