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11일 ‘누진제 완화’ 카드를 꺼내든 것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뒤늦게 마련되면서 7, 8월 폭염에도 에어컨 사용을 자제해온 소비자들의 불만은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한편 이날 전력 수요 최고치는 8497만 kW로 8일 세워졌던 여름철 최고 기록(8370만 kW)을 사흘 만에 갈아 치웠다. 전력예비율은 7.9%(예비력 719만 kW)까지 떨어졌다.
○ 10만 원 요금 나온 사람 2만 원 혜택
이번 누진제 완화 조치는 모든 가구가 대상이며, 지난해와 비교해 할인 및 수혜 가구 규모가 3배 이상 크다. 지난해엔 수혜 대상이 작아 누진제 완화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지적을 반영한 결과다.
구체적으로는 올 여름철(7∼9월) 3개월 동안 6개 누진 구간의 사용량 상한선이 각각 50kWh씩 높여진다. 예컨대 kWh당 187.9원의 요금이 부과되는 3단계 구간은 종전 기준으로는 ‘201∼300kWh’이지만 이번 여름에는 ‘251∼350kWh’로 확대된다.
이런 식으로 종전 방식대로라면 한 달 전기요금을 10만 원 정도 내야 하는 소비자가 새로운 방식에선 2만 원 할인된 8만 원 정도 내면 된다. 올 8월에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인 250kWh를 사용하는 가구라면 전기요금이 23.8%(3만3710원→2만5700원) 내려간다. 에어컨을 많이 써 전기사용량이 350kWh가 된 가구는 요금이 6만2900원에서 4만7850원으로 싸진다. 이번 조치는 당장 이달에 납부할 7월 전기요금부터 적용된다. 7월 요금 고지서가 이달 22일경 발급될 예정이어서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누진제 완화로 2200만 가구가 평균 19.4%씩 모두 4200억 원의 전기요금 절감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며 “재원은 한국전력공사의 수익금에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금 할인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 우려와 관련해서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경감 방안이 시행되면 전력 수요가 피크 기준 78만 kW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안정적 전력 수급엔 차질이 없도록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누진제 외 전기요금 체제 개편 계획은 없어”
정부는 앞으로 당정 관계자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누진제 개혁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1974년 처음 도입된 누진제는 이후 몇 차례 부분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다 2004년 현행 6개 구간 체제로 개편됐다.
일각에선 그간 누진제 개편에 꿈쩍도 하지 않던 정부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부랴부랴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을 두고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당정협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전기소비 패턴의 변화가 있다 보니 현행 누진제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한국전력공사의 영업이익, 미세먼지 저감 대책,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합의 도출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누진제 완화와 별도로 전기요금 인하 계획은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우 차관은 전기요금 인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번 누진제 완화 방안은 올해 이상폭염에 따른 예외조치이며, (누진제 개선 이외의) 전반적인 요금 체제에 대한 개편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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