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한시적 완화]新전기요금 체계, 이렇게 해야
전문가 “누진 3단계, 2배율 적당… 가구원 수 따른 맞춤형 필요”
누진제 완화땐 저소득층 부담 늘수도… 할인혜택 확대 보완대책 마련을
정부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방침을 밝힘에 따라 어떤 내용이 담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가 지나치게 누진 구간이 많고 구간 사이의 요금 격차가 커 문제가 있는 만큼 이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도입된 지 42년이나 지난 누진제를 보완할 절호의 기회인 만큼 새 개편안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충분히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누진 구간 및 배율 줄여야”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김진우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 특임교수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현행 6개 누진 단계를 절반 수준인 3단계로 줄이고, 11.7배에 달하는 누진 배율을 2배 남짓으로 낮춰야 한다”며 “그래야 일반 국민의 정상적인 냉방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진 구간과 요금 차를 줄이면 전기를 적게 쓰는 봄가을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다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전기를 많이 쓰는 여름, 겨울철에 갑작스러운 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부담은 사라지게 된다.
정부는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이 외국에 비해 싼 편이라고 설명하지만 가파른 누진 구조 때문에 소비자가 체감하는 실제 부담은 훨씬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비중이 가장 높은(대부분의 중산층 가구가 해당) 3, 4단계 구간 소비자가 체감한 전기요금은 kWh당 210∼320원이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kWh당 202원보다 최대 1.6배 가까이 비싼 수준이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가구 구성에 맞춰 누진제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여전히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전력 소비량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만들어진 1970년대에 비해 지금은 전기를 적게 쓰는 고소득 1인 가구가 크게 늘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누진제를 처음 설계할 때만 해도 모든 가구가 대부분 4, 5인으로 구성된 다인 가구였지만 오늘날은 1, 2인 가구 등으로 유형이 다양해졌다”며 “가구 구성원 수가 적으면 누진제 혜택을 많이 받는 구조는 시대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단일기준으로 누진제를 운영하기보다 다양한 기준을 두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1인 가구는 50kWh 단위로, 4인 가구는 200kWh 단위로 누진 구간을 나누는 식이다. 홍 교수는 “이렇게 하면 고소득 1인 가구에 혜택이 몰리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노약자나 다자녀 가구 등 여러 가지 가구 특징에 맞춰 요금 체계를 세밀하게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소외계층 보호 대책 마련해야”
정부가 누진제에 손을 댄다는 것은 저소득층보다는 중산층에 초점을 둔 정책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의 요금이 늘어나는 대신 전기를 많이 쓰는 가구의 요금은 줄어드는 역진성이 발생할 수 있다.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 중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적은 1인 가구나 맞벌이 가구 등도 있지만 저소득층 가구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진제 개편 시 저소득층과 노약자,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정부는 3급 이상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에 대해서는 월 8000원 정액 할인을 해주고 차상위 계층은 2000원, 3자녀 이상 가구는 월 1만2000원 한도 내에서 요금의 20%를 할인해 주고 있다. 만약 누진제 완화로 이들 가구의 요금이 오를 경우 할인 혜택을 더 늘리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소외계층을 위해 냉방용 에너지를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카드 형태의 바우처 지원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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