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특파원 현장르포]태영호 떠난 런던의 北대사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0일 03시 00분


벨 눌러도 응답없어…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불빛만

19일 오전(현지 시간) 영국 런던 북부 일링 지역 주택가에 자리 잡은 북한대사관. 1, 2층 창문에 내려진 블라인드는 
외부의 시선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철제 담장에 매달린 우편함(왼쪽)에 수북이 꽂힌 우편물은 태영호 공사 탈북 이후 대사관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상징하는 듯했다. 런던=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9일 오전(현지 시간) 영국 런던 북부 일링 지역 주택가에 자리 잡은 북한대사관. 1, 2층 창문에 내려진 블라인드는 외부의 시선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철제 담장에 매달린 우편함(왼쪽)에 수북이 꽂힌 우편물은 태영호 공사 탈북 이후 대사관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상징하는 듯했다. 런던=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동정민 특파원
동정민 특파원
19일 오전(현지 시간) 영국 수도 런던 북쪽 변두리인 일링 지역 주택가. 태영호 공사가 망명하기 전 일하고 거주했던 북한대사관의 대문은 단단히 잠긴 채였다.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답이 없었고 1, 2층 창문도 블라인드로 모두 가려져 외부의 시선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대문 앞에 걸린 검은색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가득 차 입구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대사관에 장기 칩거하고 있는 대사관 직원들은 문 앞 우편물도 수거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지 소식통은 “당 지도부인 태 공사가 직원들의 우편물을 검사하는 역할을 했을 텐데 태 공사가 사라진 한 달 동안 대사관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우편물 중에는 유명 가구점인 ‘이케아’ 같은 생활 관련 홍보책자도 들어 있었다. 외교관들이 대사관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북한 특유의 시스템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본국으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대사관 직원 이름으로 된 우편물도 있었다.

‘여보세요’라고 여러 차례 소리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2층에서 불빛이 새어 나와 누군가가 거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사관 곳곳에는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누군가가 안에서 기자의 행동거지를 살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9년째 머물고 있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은 “지금 북한대사관은 외부인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본국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며 “태 공사는 당 지도부로 실질적인 관리자 역할을 하며 실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과 달리 변두리에 자리한 북한대사관을 찾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사관에는 당연히 걸려 있어야 할 국기나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도 없었다. 지역 주민들이 북한대사관이 있는 것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1년 북한이 주택을 구입해 대사관을 설립할 때도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곳에는 현재 현학봉 대사와 다른 직원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 당시 약 130만 파운드(약 19억1553만 원)를 들여 구매한 2층짜리 건물 뒤에는 꽤 넓은 마당도 있어 과거 사정이 좋았을 때는 외부 손님들이 초대된 리셉션도 열렸다고 한다.

현지 외교가의 가장 큰 관심사는 현 대사가 언제 본국으로 소환될지다. 현지 소식통은 “현 대사는 북한에 가족을 남겨 놓고 혼자 나와 있어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며 “워낙 큰 건이라 본국 소환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 공사의 망명에 대해 북한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조미평화센터 김명철 소장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태 공사의 망명은 한국 정보당국이 뇌물을 줬거나 강압에 의한 것”이라며 “한국 정보기관들의 전형적인 작업으로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책략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4월 중국 내 북한식당인 ‘류경식당’ 종업원 13명의 사례를 들며 “한국 정부가 돈 또는 여자들로 전 세계 북한 외교관들을 유혹하려고 하고 있다”며 “그의 자녀들을 납치해 그가 한국에 가겠다고 동의할 때까지 인질로 잡아뒀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태영호#망명#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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