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외국인 명의로 계좌 만들어 北비자금 관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2일 03시 00분


北의 유럽자금총책 망명 막전막후

노동당 39호실 유럽 자금총책 김명철 씨는 유럽에서 외국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북한의 비자금을 능숙하게 분산 관리하던 전문가로 알려졌다. 김 씨가 갖고 잠적한 차명계좌 중엔 인도인 명의의 계좌도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 씨는 인도인 명의의 차명계좌에서 돈을 찾기 위해 예금주의 위임장을 지닌 변호사를 차명계좌가 있는 은행에 보내 다른 은행에 있는 자신의 계좌나 현지처 명의의 계좌에 돈을 입금시켰다. 이후 김 씨가 돈이 입금된 은행 지점에서 매니저를 만나 인출했다. 인도인은 김 씨가 조작한 가상의 인물이다. 김 씨는 유럽의 많은 중소은행들이 예금 유치만 중시한다는 허점을 파고들어 이런 방식을 활용해 다양한 차명계좌를 관리했다고 한다.

북한 인사 명의의 계좌는 서방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북한은 자금세탁 블랙요원을 활용해 비자금을 숨겨왔다. 김 씨 정도 레벨의 ‘기술자’는 북한에 몇 명 되지 않아 북한 당국의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김 씨는 평양엔 본부인을, 해외엔 현지인 부인을 두는 이중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식은 북한 부인에게서만 낳는다는 노동당의 원칙 때문에 현지인 부인과는 자녀를 두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두 아들을 서방에서 키웠다. 김 씨는 해당 국가 영주권자이지만 두 아들은 올 상반기에 해당 국가 시민권을 차례로 획득했다.

그의 마음이 떠난 배경에는 북한의 과도한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몇 년 전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외화 획득 과제를 부과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가족 중 한 명을 터무니없는 구실로 국가안전보위부 감방에 가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자주 쓰는 가족을 인질로 하는 압박전술이었다. 그래도 김 씨가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자 구속된 가족을 고문하기 시작했고 결국 가족이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경우 해외 요원은 철수시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김 씨를 대체할 인물이 없어 즉각 소환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김 씨가 분노해 망명길에 오르게 했다. 김 씨 가족을 숨지게 만든 보위부 요원은 처벌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현재 서방 국가의 보호 아래 주기적으로 은신처를 옮기며 잠적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씨는 한국에서의 신변 안전 문제, 미국의 독재자 자금 전액 몰수 정책 때문에 망명지를 어디로 선택할지를 두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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