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네이마르와 우병우, 우리 시대의 우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2일 03시 00분


올림픽 축구 네이마르 황금슛, 조국에 경제개혁 계기 선사할까
대통령중심제 브라질과 한국… 행정부-입법부 충돌 못 피해
부정부패·‘정피아’가 관행으로 한국보다 사법독립성 지수 낮은
브라질 검사 대대적 수사 나섰다
유능한 우병우, 검사들 우상인가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네이마르의 황금발이 독일을 꺾지 못했다면 브라질에선 폭동이 날 뻔했다. 우리 시간으로 21일 오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브라질의 스타 네이마르가 조국에 첫 축구 금메달을 안기기까지, 이 나라에선 “7 대 1 먹었다”가 “망했다”와 동의어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전 때 독일에 7-1로 참패를 당하고 나자 3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 절차가 시작됐을 때도 “대통령이 7 대 1 먹었다”, 올림픽 준비 부실로 국제 망신을 당할 때도 “7 대 1 먹었다”고들 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가 됐듯이 축구처럼 정치적인 스포츠도 없다. 2년 전 월드컵 때 홍명보 감독은 ‘으리’(의리)에 죽고 살 것처럼 ‘엔트으리’에 영국 2부 리그 후보인 박주영을 집어넣더니 원칙 없는 ‘불통 리더십’을 휘둘러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 뒤론 경제나 정치나 계속 내리막길로 내달리면서 올 초 대통령은 경제·안보 복합 위기를 선언한 상태다(그러다 광복절 때 돌연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번영의 주역’으로 격상됐다).

브라질은 우리보다 더하다. 허리가 휙휙 돌아가고 몸이 파도처럼 출렁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가 삼바축구다. 축구 선수나 정치인이나 황금률은 건달처럼 잘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소년팀 코치까지 뇌물을 밝히게 되면서 월드컵 7-1이라는 굴욕적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브라질 경제 붐을 일으켰던 원자재 거품 붕괴에 호세프의 지나친 경제개입 정책으로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 침체가 닥쳤고, 입때껏 잘 빠져나가던 정치건달들의 부패가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급기야 대통령을 갈아 치우는 ‘의회 쿠데타’로 이어진 상황이다.

이때 폭죽처럼 터진 네이마르의 황금 슛은 브라질의 명운을 되살리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보통 때 같으면 국민 지지를 받기 어려운 재정개혁안이지만 축제 분위기 속에서라면 의회 통과도 가능하다. 어쩌면 우리 대통령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강조하면서 노동개혁법안의 국회 처리를 요구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세계 8대 경제규모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도 안 되는 브라질과 3만 달러에 육박하는 한국을 비교하는 건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재정회계 조작 혐의로 대통령 탄핵까지 불러온 최악의 부패 스캔들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충돌에서 비롯됐다는 최근 포린어페어스지(誌) 분석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대통령이 원하는 입법이 의회 ‘발목 잡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의회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것이 필수다. 이 나라에선 정당 설립의 최소 인원이 따로 없어 현재 의회에 진출한 정당 수가 28개나 된다. 브라질 행정부는 의원들과 끝장 토론이라도 해서 설득과 타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과 뇌물, 국영기업 자리 등을 나눠주는 쉽고도 비싼 길을 택했다. ‘정피아’가 제도화된 셈이다.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대통령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반면에 브라질은 의원마다 낙하산을 보내는 것이랄까.

브라질에서 요즘 논의되는 것이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도 어제 퇴임 회견에서 “제왕적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여당은 거수기로 전락해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대선 주자들은 개헌에 대한 견해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헌법학자 칼 뢰벤스타인이 1965년 “미국의 대통령제는 모방하기 어려운 제도”라고 설파하고, 한태연이 1960년 “정치적 숙련성과 관용성이 적은 후진국가에서 대통령제는 중남미 제국의 경우처럼 지독한 부패를 동반한 독재정치로 타락하게 된다”고 한 지적이 지금도 틀리지 않는다면 끔찍한 일이다.

브라질의 대대적 부패 수사 ‘라바 자투(Lava Jato·세차 작전)’는 이번에야말로 수십 년 적폐를 척결하겠다는 신세대 판검사들이 있어 가능했다. 작년 9월에 나온 2015∼2016 세계경제포럼 경쟁력지수에서 브라질의 사법 독립성 순위(92위)가 우리(69위)보다 낮다는 게 안 믿길 정도다. 축구는 룰이 있고 결과가 공정해 네이마르 같은 아이들의 우상이 탄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검사 우병우는 우리 청소년들, 아니 검사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을까. 2016∼2017년 사법 독립성 순위는 어떻게 나올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참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브라질#부패 수사#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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