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정수석, 특별수사팀 조사받고 ‘보고’도 받겠다는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5일 00시 00분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유출 혐의를 동시에 수사할 윤갑근 특별수사팀장(고검장)이 어제 수사팀 구성을 마쳤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닷새나 고심한 끝에 우 수석과 이런저런 연고가 있는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맡기지 않고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현직’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직접 지휘함으로써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막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수사를 어느 팀에서 하든 검찰이 다루는 주요 사건들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통해 민정수석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우 수석이 그 자리에 있는 한, 오전에는 특별수사팀의 조사를 받고 오후에는 그 조사 내용을 보고받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민정수석은 모든 검찰 간부들의 존안 파일을 쥐고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다. 검찰총장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수사팀 검사들이나 곳곳에 퍼진 ‘우병우 사단’은 청와대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윤 팀장만 해도 우 수석과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수사를 당시 우병우 민정비서관과 공조하며 깔끔하게 처리한 전력이 있고 우 수석의 인사검증을 거쳐 검사장에 승진했다. 그는 “개인적 인연에 연연해서 (수사)할 정도로 그렇게 미련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과연 ‘살아있는 권력’을 자신의 말처럼 공정하게 수사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수사 대상인 우 수석에게 수사 내용이 보고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윤 팀장은 “수사가 방해받는 상황의 보고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윤 팀장과 검찰총장의 의지와 상관없이 법무부 장관을 통한 청와대 보고는 막을 수 없다. 어느 모로 보나 우 수석이 사표를 내고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이 정도(正道)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소한 민정수석의 직무라도 정지시켜야 마땅하다. 과거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의 고위직이 수사를 받게 되면 사표를 낸 뒤 검찰에 출두했지 우 수석 같은 전례는 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쓴 “국민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공직자는 조직을,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지적은 우 수석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해당된다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가 끝까지 우 수석을 감싸거나 특별수사팀의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들다가는 결국 국회가 특검을 도입하고 박 대통령의 권위도 크게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우병우#이석수#특별수사팀#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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