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사건의 발단은 조선일보가 지난달 18일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처가 부동산을 넥슨이 1326억 원에 사 줬다고 보도하면서다.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회장에게서 9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이 우 수석 처가의 강남 부동산을 넥슨이 사 주도록 연결해 줬고, 그 대신 우 수석은 진 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뇌물’을 눈감아 준 것 아니냐는 게 보도의 핵심이었다.
한 달여간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의 의혹 제기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우 수석을 사퇴시키지 않았다. 넥슨의 우 수석 처가 부동산 매입에 진 전 검사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입증할 결정적 근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곁가지 의혹’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18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자 청와대는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 감찰관이 ‘특정 언론(조선일보)’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며 이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판한 데 이어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고 공세를 편 것이다.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한 선전포고였다.
청와대가 굳이 ‘부패 기득권 세력’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곧 밝혀졌다. 송 전 주필이 각종 비리에 휩싸인 대우조선 측에서 경비를 제공받아 초호화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는 의혹이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폭로로 드러난 것이다. 30일엔 송 전 주필이 대우조선 고재호 전 사장 연임 로비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통해 언론에 흘러나왔다. 이 외에도 정치권에선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갈등을 둘러싼 여러 설(說)이 나돌고 있다. 이 중에는 각종 민원이나 청탁과 관련된 내용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조선일보는 김 의원이 26일 송 전 주필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채 ‘S 주필의 전세기 출장’ 의혹을 제기하자 경영기획실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전세기 비용을 1인당 항공료로 계산하면 200만 원대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호화 전세기 이용 주장은 과장됐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이 사실을 지면에는 보도하지 않았다.
29일 김 의원이 송 전 주필의 실명을 공개하며 재반박에 나서자 조선일보는 송 전 주필의 보직해임을 1면에 보도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제기한 초호화 유럽여행을 다녀오게 된 경위나 대우조선과의 유착 의혹 등에 대해선 해명하지 않았다. 경영기획실은 김 의원의 2차 폭로 이후 해명을 요청하자 “송 전 주필에게 직접 물어보라”며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대신 조선일보는 30일자 신문에서 이 특별감찰관과 통화한 조선일보 기자의 실명을 공개한 뒤 해당 기자의 휴대전화를 검찰이 압수한 사실을 상세히 보도했다. 해당 기자는 우 수석 의혹을 처음 보도한 당사자다. 조선일보 기자와 이 특별감찰관의 통화 내용을 보도한 MBC에 대해선 수사하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검찰이 편파 수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언론 탄압 프레임’으로 역공을 편 것이다.
여권 핵심부는 보수 유력지의 부패 의혹까지 폭로하며 ‘철통방어’에 들어갔다. 우 수석 논란은 ‘의혹’이고, 송 전 주필 논란은 ‘팩트’라는 것이다. 한 여권 인사는 “우병우 사태의 여진이 내년 대선구도에까지 이어질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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