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내부자들’의 주술에 걸린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일 03시 00분


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 사건’ 이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 말을 수없이 되뇌었을 한 사람이 떠오른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그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은 ‘민중은 개돼지’ 막말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들과의 논쟁에서 지지 않겠다는, 오만이 부른 승부욕 탓이 훨씬 더 크다.

막말보다 오만으로 추락해

그는 술자리를 함께한 기자들이 자리를 뛰쳐나가고, 녹음을 시작했을 때도 ‘녹음을 중단하라’고 했을 뿐,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설득하려 했다. ‘취중에 실언을 했다’고 사과했거나, 차라리 술상에 엎어졌다면 일이 그토록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1% 엘리트’(본인은 ‘1%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만)가 흔히 범하는 실수다. 나름의 성공신화에 빠진 그들은 잘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내 탓’보다는 ‘네 탓’에 익숙하다. 파면 처분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청구한 그가 이젠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까.

우리 사회가 영화 ‘내부자들’의 주술에 걸린 듯한 요즘이다. 영화에서 ‘민중은 개돼지’란 대사를 읊은 이가 ‘조국일보’ 논설주간이다. 이름도 비슷한 신문의 주필이 논설주간 시절 기업의 돈으로 1인당 1억 원이 든다는 초호화 유럽 여행을 한 행적 등이 드러나 물러났다. 영화를 본 뒤 ‘재미있는 픽션이지만, 언론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평가했던 나도 할 말이 없다. 국민이 언론인을 어떻게 볼까 생각하면 참담한 기분조차 든다.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의 부적절한 행적의 공개 경위를 두고 ‘청와대의 기획’이라는 음모론이 있다. 추후 규명돼야 할 일이지만 본 칼럼에서 구구하게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어느 때부턴가 잘못이라곤 인정하지 않고, 요즘엔 ‘내 편’ ‘네 편’까지 가르는 청와대가 걱정이다. 나향욱의 추락은 실수나 삐뚤어진 소신보다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밀리지 않겠다는 오만 때문이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겹치는 일이 많아 놀랍다. ‘금수저’ 보수우파와 ‘흙수저’ 진보좌파 출신인 두 대통령.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아무리 언론이 지적해도 꿈쩍 않는, 그 무서운 소신(?)이 닮았다. 두 분 다 상상하기 어려운 신산(辛酸)을 거쳐 그 자리까지 갔다. 그만큼 ‘자기 확신’도 강하기에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최후의 버팀목인 골수 지지층이 있는 것까지 닮았다.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 했다”고 토로한 것까지 닮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인사들은 가장 진언하기 어려운 것이 인사 문제라고 한다. “기업 오너에게 돈 문제를 진언하면 ‘그게 네 돈이냐’라고 생각하듯, VIP(대통령)에게 인사 문제를 꺼내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정권 흔들기’니 뭐니 하면서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 집착하는 청와대를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남의 말 안 듣는 두 대통령

‘제왕학의 교과서’라는 ‘정관정요(貞觀政要)’ 1권 ‘군치론(君治論)’에서 당 태종이 신하 위징에게 묻는다. “명군(明君)과 암군(暗君)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오?” 위징의 답. “군주가 밝은 것은 두루 여러 사람의 말을 듣기 때문이고, 우매한 것은 한쪽 말만 편벽되게 듣기 때문입니다….”(‘창업과 수성의 리더십 정관정요’·신동준 옮김) 알다시피 정관정요는 박 대통령의 애독서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나향욱#내부자들#조선일보#송희영#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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