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장(場)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제3지대 후보론’에 대한 여야 비주류 대선 주자들의 반응이 그렇다. 한국 정치지형을 양분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친박(친박근혜)계가, 더불어민주당은 친문(친문재인)계가 장악하면서 제3지대론이 급부상했다. 당내 비주류 대선 주자들의 입지가 더 좁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제3지대론에 손사래를 친다. 왜 스스로 ‘출구’를 닫은 걸까.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더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당에서 안 되면 저 당, 저 당에서 또 안 되면 또 다른 데로 가는 게 제3지대라면 나는 관심이 없다”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 비주류 후보들도 다르지 않다. 유승민 의원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당 밖으로 몇 명 뛰쳐나간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내 정치 목표는 새누리당 내부에서 당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제3지대론의 싹이 트기도 전에 꺾인 모양새다. 이는 한국 정치사의 경험칙과 무관하지 않다. 대선 때마다 제3지대론이 움텄지만 성공한 전례가 없다. 역대 대선에서 가장 선전한 제3지대 후보는 1997년 대선 당시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다. 이 후보의 득표율은 19.2%였다. 1992년 대선 때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가 16.3%, 2007년 대선 때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15.1%를 얻었다. 어느 제3지대 후보도 20%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거대 정당이 지역을 기반으로 ‘조직화된 표밭’을 갖고 있는 반면에 ‘중도 표심’은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제3지대 도전의 걸림돌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후보가 ‘격차 해소’나 ‘국민 통합’ 등 비슷한 화두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3지대 후보가 이념적, 정책적 차별화를 꾀하기도 쉽지 않다.
이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현재 새누리당에선 ‘반기문 대세론’이, 더민주당에선 ‘문재인 대세론’이 나온다. 대세론을 등에 업은 후보는 당 안팎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이는 비주류 후보들에겐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 대세론이 꺾이는 순간 비주류 후보가 ‘대안 후보’로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제3지대를 얘기하기엔 빨라도 너무 빠른 것이다.
비주류 후보 중 상당수가 차기보다는 차차기(2022년 대선)를 노릴 수 있다는 점도 제3지대론의 동력을 떨어뜨린다. 한번 탈당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정치적 기반을 모두 잃을 수 있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2007년 3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탈당한 더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 ‘학습효과’이기도 하다.
결국 더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박 위원장이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손 전 고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등 이번 대선이 사실상 마지막일 수 있는 여야의 ‘백전노장’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제3지대론의 파괴력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3지대론의 성공 여부는 후보들의 행보보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현상’처럼 정치 변화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에 달렸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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