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여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 개회사의 ‘정치적 편향 논란’으로 올스톱된 국회가 하루 만에 정상화된 것은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라는 시급한 현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시 봉합’이란 얘기다. 20대 첫 정기국회를 시작하며 보여준 여소야대 국회의 극한 대립은 예측 불허의 ‘정치 리스크’가 향후 정국의 최대 불안 요인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개회사 충돌’에서 집권여당은 강공 일변도였다. 수적 우위의 야권은 이런 여당을 조롱하며 힘자랑을 즐겼다. 이를 중재해야 할 국회의장은 분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강(强) 대 강’ 충돌 속에 청와대 역시 양보할 태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출구를 찾긴 했지만 이런 ‘마이 웨이 정국’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 여권, “우리의 힘 확인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 의장을 상대로 ‘본회의 사회권을 국회부의장에게 넘겨라’라는 요구를 관철시킨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진작 이 힘을 되찾아야 했다. 내년 12월 목표(정권 재창출)를 완성하기 위해 이 힘을 잘 간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강경 투쟁’이 성과를 냈다는 자평인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하루 종일 의원총회와 국회 로텐더홀 농성, 국회의장실 항의 방문을 되풀이했다. 당내에선 “지도부가 초·재선 의원들보다 더 흥분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강경파의 목소리에 묻혔다.
전날 정 의장의 개회사를 ‘정치적 도발’로 규정한 이정현 대표는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테러”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염동열 의원은 이 대표의 ‘테러’ 발언을 받아 “악성균, 테러균인 정 의장은 이 사회에 암과 같은 바이러스다. 추경파행균, 민생파괴균으로 지카(바이러스), 메르스보다 더 아프게 국민을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정 의장의 이름을 빗댄 막말성 비난이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도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국회의장실 항의 방문 과정에선 일부 의원과 의장 경호원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식물국회’라는 비판을 받은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에서 다시 ‘동물국회’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병우 지키기’로 몰아간 야권
야권은 집권여당의 국회 일정 보이콧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다수당의 책임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날 새누리당의 정 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 채택을 두고 “하하하, 제가 웃었다고 전해 달라”고 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새누리당이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키는 행동대원으로 전락했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퇴장한 건 정 의장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언급했을 때다. 새누리당 주광덕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일부 언론이 ‘우병우 수석 때문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고 제목을 뽑았다. 하지만 우리가 우병우 때문에 뛰쳐나갔느냐, 우병우 때문에 폭발했느냐, 우병우 때문에 웅성거렸느냐”며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새누리당의 극한 선택은 20대 국회 개원 이후 3개월간의 ‘야권 독주’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크다. 지난달 14일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같은 달 31일에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안건이 처리됐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여당이 불참하면 야당 단독으로 열렸다. 야당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의견도 단독으로 채택했다. 야권이 번번이 수적 우위로 밀어붙이자 여권이 역공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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