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대란 뒷북 대응… 한진 배 절반 멈추고 나서야 ‘맹탕 대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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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정부]수출업체 피해 현실화

《 정부의 뒤늦은 정책 대응과 책임 떠넘기기가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해운업계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인한 경제적 파장을 수차례 경고했지만 안일하게 대응했다가 국제적 관심을 끄는 물류대란으로 비화하고 있다. 피해 추산은 물론이고 대응책 마련에도 소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멍이 뚫린 콜레라 감시 체계를 두고서는 책임을 떠넘기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질병 관리는 질병관리본부의 업무라고 떠밀고 있고, 질병관리본부는 식품을 관리하는 것은 식약처의 임무라고 미루고 있다.

 

뒤늦게 부처합동 TF 꾸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9개 정부 부처와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사태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뒤늦게 부처합동 TF 꾸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9개 정부 부처와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사태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진해운 선박의 절반이 멈춰서면서 정부가 4일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확산 일로의 물류대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차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따른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던 해운업계는 정부의 안이한 뒷북 대응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미국 최대 쇼핑시즌을 앞두고 발생할 수출업체의 피해는 하반기 실물경제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 법정관리 신청 4일 만에 범정부 대책반 꾸려


이날 오후까지 한진해운 선박 중 각국 항만에서 입출항을 거부당했거나 가압류된 선박은 전체 운항 중인 141척 가운데 절반 정도(48.2%)인 68척으로 늘어났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주재로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등 9개 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범(汎)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지난달 31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4일 만이다. 그만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따른 파장을 과소평가했다는 방증이다. 실제 법정관리에 앞서 해운업계는 피해 규모를 최대 17조 원으로 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과장됐다는 반응을 보였을 뿐 구체적인 피해 규모도 추산하지 않았다. 또 법정관리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음에도 정부가 실효성 있는 ‘위기 대응 시나리오’조차 짜두지 않은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주무 부처인 해수부가 첫 비상대책회의를 연 것은 법정관리가 신청되고 나서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수출 전선에 대혼란을 불러올 결정에 앞서 정부가 부처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지적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단이 해운업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금융논리에만 치우친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채권단 관계자는 “(수요 침체로) 화물은 적고 선박은 공급 과잉 상태”라며 물류대란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 채권단의 미묘한 입장 변화


해수부는 이날 한진해운을 통해 43개국 법원에 선박에 대한 즉시 압류금지(스테이오더·Stay Order)를 신청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스테이오더 결정은 1, 2주가 걸리고 중국 파나마 등 주요 거래 국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현대상선의 대체선박 13척(미주 4개 노선, 유럽 8개 노선)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멈춰선 선박 68척의 20%도 되지 않는다. 선박을 구하기 어려워 빨라야 나흘 뒤인 8일에나 출항이 가능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세계 각지의 한진해운 선박까지 가는 시일이 상당 기간 소요되고 도착하더라도 당장 컨테이너를 옮겨 싣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한진해운이 용선료와 하역 운반비 등 미지불금을 내야 물류대란을 해결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정부가 밀린 대금에 지급보증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무(無)지원 원칙’을 고수하던 금융당국도 한진그룹에 대한 조건부 자금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이날 내비쳤다. 한진해운 대주주인 한진그룹이 선박 입출항, 하역 등과 관련해 연체한 대금 일부를 먼저 납부하고 추가 담보를 제공한다면 채권단도 추가 자금 지원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진해운 관계자는 “이미 우량 자산을 다 팔아서 무엇을 추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융권과 해운업계에서는 한진그룹도 이번 물류대란을 해소하는 데 일정 부분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최대 성수기 앞두고 속 타는 수출업계


미국에 수출하는 업체로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쇼핑시즌인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 날·11월 네 번째 금요일)를 앞두고 한진해운 사태가 벌어진 점은 치명적이다.

조성진 LG전자 사장은 2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한진해운 사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안 좋아지는 쪽으로 가고 있어 걱정”이라며 “블랙프라이데이 등 프로모션들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업계의 우려를 전했다. 미국 소매업계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미국소매연합(NRF)이 미 정부에 대책을 주문한 데 이어 6, 7일 뉴욕 뉴저지와 미 서부 해안 항만 관계자들과 대책회의를 갖기로 하면서 국제적 이슈로 번지고 있다.

한편 지난달 31일 영국 해운사인 ‘조디악’이 미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에 한진해운을 상대로 받지 못한 307억 달러의 용선료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전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정임수·이호재 기자
#물류대란#한진#수출#법정관리#tf#김영석#해양수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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