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어제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시 주석은 “이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 지역의 전략적 안정에 불리하고 각 측의 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북핵 및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한중 간 소통과 함께 ‘한미중 간 소통’을 제안했다.
한국과 미국이 7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결정한 이후 첫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각차를 좁히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이 사활을 걸고 나섰다면 우리나라에 사드를 배치할 필요가 없으며, 사드는 한국 방위를 위한 자위적 조치임을 당당하게 설명했어야 했다. 북한은 어제도 탄도미사일 3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북한 김정은이 베이징에 핵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한다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중국은 최근 필리핀 인근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 주변에 선박 약 10척을 집결시켜 기지 건설을 위한 매립에 나섰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상설중재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다. 국제법과 규범을 무시하고 중국과 주변국들을 주종(主從)관계로 인식하는 중화제국의 패권의식은 21세기에 맞지 않는다.
시 주석은 모두발언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30년대 항저우에서 3년간 활동했던 과거를 거론했다. 당시 중국의 지원을 받은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장군이 1996년 중국을 방문해 ‘음수사원(飮水思源·근원을 생각하고 그에 감사하라) 한중우의’라는 글을 남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시정부를 도운 것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였고, 시 주석이 이를 언급한 것은 외교 결례이기도 하지만 한중 선린우호를 위한 의도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지금 한중 관계는 그때와는 거리가 멀다.
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중국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대중(對中) 외교에 공을 들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중국과 구존동이(求存同異)의 외교 관계를 추구하되 생존 차원의 사드 배치까지 양해를 구할 이유는 없다. 중국이 한국의 존망에는 관심 없이 미국 패권에 도전한 상황에서 우리가 믿을 것은 한미동맹뿐이다. 박 대통령은 7, 8일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 기간에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북의 핵 도박에 한국과 미국이 중국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깊은 전략적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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