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척 중 79척 ‘난민 신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6일 03시 00분


[한진해운 후폭풍]무역협회 운송차질 접수 눈덩이

미국, 유럽으로 버섯, 배 등 신선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는 A사의 고민은 날로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한진해운 선박의 하역 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A사 관계자는 “제때 납품이 되지 않으면 판촉 시즌이 어긋나 팔 수 없다. 전량 폐기해야 할 위기”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진해운을 이용하던 화주(貨主)의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5일 오전까지 한국무역협회의 ‘수출화물 물류 애로 신고센터’에 신고된 것만 32개사로, 피해액은 1138만 달러(약 127억4560만 원)로 추산된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업체 수와 피해 금액이 늘고 있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화주의 물건을 선박에 싣고 통관 절차를 대행하는 ‘포워딩(Forwarding) 업체’들도 속수무책이다. 한진해운과 거래하는 ‘포워딩 업체’ 중 가장 덩치가 큰 B사는 컨테이너 600개 정도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현재 대체 선박의 운임은 40∼50% 상승했고, 항공기를 이용하면 운임을 10배나 더 줘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화주들이 ‘적기 납기’라는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줄소송을 걸어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해운업은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정부나 채권단이 너무 단순하게만 본 것 같다”며 혀를 찼다. 다른 포워딩 업체인 C사 관계자는 “이번 달 해외 선사의 선복(船腹·화물을 싣도록 구획된 공간)이 모두 동이 났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 포워딩 업체는 4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진해운 선박 128척 중 컨테이너 30만 개가 실린 79척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발이 묶인 컨테이너 중 11%는 국내 화물로 파악된다. 한진해운 선원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이날 한진해운 노조는 “선박 50여 척이 외항에서 무기한 대기하면서 선원들에게 물품 보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이 대체 선박 13척을 8일부터 순차적으로 투입할 예정이지만 한진해운의 주력 노선을 커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운임도 올랐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31일에 9월 운임을 1TEU(약 6m 길이의 컨테이너 1개)당 600∼800달러 올리겠다고 확정 공지했고 10월에는 여기서 다시 1300∼1500달러를 올릴 계획이다. 11월 말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을 앞두고 물건을 대량으로 보내야 할 대기업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편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로 지역 경제에 직격탄을 맞은 부산 지역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김무성 김세연 배덕광 윤상진 하태경 의원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같은 당 조원진 장석춘 문진국 임이자 신보라 의원 등은 5일 국회에서 ‘한진해운 관련 고용 지원 방안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과 고영선 차관 등이 참석했다.

하태경 의원은 간담회를 마친 뒤 “고용부는 추석 전에 체불임금 관련 종합대책을 수립해 적극 대처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해운업을 포함한 업종별 체불임금을 정부가 1인당 300만 원 한도에서 먼저 지급하고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새누리당과 고용부는 체불임금 사업주에게 체불금액의 3배에 해당하는 부과금과 지연이자를 물리는 처벌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부산지역 의원들은 한진해운이 파산해 고용 문제가 악화될 경우 부산 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새누리당은 6일 한진해운 사태 관련 당정협의를 열고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선다.

박은서 clue@donga.com·이재명 기자
#한진해운#물류대란#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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