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건국절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7일 03시 00분


건국절 꼭 정해야 한다면 1948년 정부 수립이 맞지만 건국절 없는 나라 많아
건국의 핵심은 국민의 일체감… 오바마의 미국은 여전히 건국中
건국은 어느 시점이 아니라 통일 후에도 계속될 과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건국을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보는 측은 망명정부(government in exile)와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의 엄연한 차이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망명정부는 원래 있던 정부가 외국으로 옮겨간 것이지만 임시정부는 정부가 생기기 전의 말 그대로 임시정부다.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돼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은 나라의 혼이라고 해보자. 혼은 있으되 살이 없던 나라가 1945년 광복으로 살(국민과 영토)을 얻고 1948년 주권을 찾았으니 비로소 건국됐다고 함이 상식에 부합하는 헌법 해석이다.

건국을 1919년으로 보는 측은 이승만을 폄하하면서도 이승만과 그의 정부가 1948년에 ‘대한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사용한 사실을 들어 반대편을 공격한다. 그러나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임시정부에서 탄핵됐음에도 자신의 정통성을 임시정부까지 연결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이승만식 연호는 결국 독재로 이어진 그의 개인적 야망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이승만과 달리 후대의 대통령들은 모두 건국 시점을 1948년으로 봤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의식적으로 억지를 부리지 않을 때는 1948년 건국설에 저도 모르게 동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2건국’이라는 분수를 모르는 욕심을 부리다가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 50년’이란 표현을 썼다. 한국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것으로 본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과 200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이 나라를 건설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민주공화국을 말하면서 국민이 선거로 뽑지도 않은 임시정부를 건국이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이승만이든 김구든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만약 꼭 건국절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날은 1948년 8월 15일이다. 그럼에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겠다는 새누리당의 시도에는 찬성할 수 없다.

실은 건국을 1919년으로 보는 측도 그때 건국이 시작됐다고 여길 뿐이고 다만 그 완성이 1948년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날(통일)이라고 본다. 이런 견해에는 대체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국이 1948년에 이뤄졌다는 것도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규정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한반도 전체의 민주공화국 수립을 위한 결정적 전진이었지만 온전한 건국에는 이르지 못했다.

건국이 언제냐는 시점을 놓고 논란을 벌이다 보면 건국이란 말의 참된 의미를 놓치기 쉽다. 미국은 긴 세월에 걸쳐 50개 주로 확장됐기 때문에 언제 건국됐느냐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미국이란 나라가 건국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을 언급한다. 그는 “최근 다시 불거진 흑백갈등은 미국이 여전히 네이션빌딩의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낙후된 사회기반시설, 비효율적인 공교육 체제를 개선하는 것도 네이션빌딩이다”라고 말한다.

현대 국가는 국민국가(nation-state)다. 국민이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이든 가난이든 어떤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는 영토와 주권이 있어도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다. 국민이 상당한 정도의 일체감을 가질 때까지 네이션빌딩은 계속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정착과 경제개발로 한반도 남쪽에서나마 네이션빌딩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도 여전히 네이션빌딩의 과정에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새로운 난제를 풀지 못하면 이 국가는 해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언젠가 맞게 될 통일조차도 네이션빌딩의 완성이 아니라 더 큰 네이션빌딩의 시작이다.

건국절 제정 시도는 네이션빌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논란만 초래한다. 미국에는 독립기념일이 있고 프랑스에는 혁명기념일이 있지만 건국절은 없다. 제대로 된 나라치고 건국절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통일 후에라도 광복절과 통일기념일이 있으면 되지 건국절은 없어도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건국절#이승만#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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