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우영감’은 김성환 화백이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한 시사만화다. 원화(原畵)가 등록문화재에 오를 만큼 4컷 속에 우리 현대사가 담겨 있다. 1957년 11월 20일자 968회는 ‘빽이 없어 미친 사람’이 “빽 빽 빽” 소리치며 다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고바우영감은 “더 좋은 빽을 소개해준다”며 어느 동상 앞으로 데려간다. 이 사람은 동상을 업고는 “빽이 있다 빽이 있어”라고 외친다.
▷‘백(Back)’을 세게 발음한 빽은 든든한 배경이나 굵직한 연줄을 뜻하는 속어다.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를 쓴 그레고리 헨더슨은 ‘뒤를 봐준다’는 의미의 한국식 영어로 광복 후에 만들어져 6·25전쟁 기간에 널리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백이 없으면 취직도, 승진도 쉽지 않은 부패 사회였다. 군대 징집도 백이 통하는 대표적 분야로 꼽혔다. 백이 좋으면 군대를 안 갈 수 있고, 가더라도 편안한 보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육군 준장 출신인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이 병역 의무가 있는 4급 이상 고위공직자 2만5388명의 9.9%인 2520명이 병역 면제자라고 밝혔다. 고위공직자들의 아들 4.4%도 병역 면제를 받았다. 올해 상반기 전체 징병검사 대상자 중 병역 면제자가 0.4%인 데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고위공직자와 그 아들들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하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백이 통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고 싶지만 ‘인사청문회 5종 세트’의 하나가 병역 기피이고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의 아들 사례를 보더라도 믿음이 흔들린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제안한 모병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찬성 쪽은 인구 감소 추세에 따른 장병 감축을 장비 현대화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쪽은 가난한 집 아들들만 군에 가게 되는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모병제는 일자리나 국방 예산 차원에서만 논의할 수 없는 사안이다. 모병제 논의가 국민의 공감을 얻으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고위층의 도덕적 의무)’가 먼저 정착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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