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국가대표 고깃값 예산의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3일 03시 00분


“다음에는 고깃집에서 선수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남겨준 여러 가지 이야기와 감동들이 많지만 기자에겐 한동안 이 얘기가 귓전을 맴돌았다. 북한 선수도 아닌 우리나라 국가대표 여자배구팀 주장 김연경이 한 말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세계 11위 경제대국 올림픽 대표선수의 희망이라니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임춘애의 30년 전 인터뷰는 와전된 것이었지만, 김연경은 도시락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경기에 나섰다.

부족한 예산 지원 때문일까. 리우 올림픽을 통해 한국의 롤 모델로 떠오른 영국과 일본을 분석해 보면 그도 아니었다. 영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적은 예산만 지원하고 있었다.

1995년 ‘UK스포츠’라는 정부 기관을 설립한 영국은 2013∼2017년 복권기금 6300만 파운드를 포함해 총 5억4300만 파운드(약 8023억 원)의 스포츠 예산을 책정했다. 올림픽 메달권 선수에게는 1인당 최대 2만8000파운드(약 4137만 원)를 지급했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문부과학성 산하 스포츠·청소년국을 스포츠청으로 격상시킨 뒤 ‘스포츠 강국 실현’을 목표로 세우고 올해 편성한 정부 예산이 324억 엔(약 3516억 원)이다. 재원은 스포츠진흥복권으로 충당했다. 지난해 일본이 복권으로 조성한 금액은 158억 엔, 우리 돈 1715억 원이었다.

반면 한국 정부가 올해 쓰는 체육 예산은 1조5386억 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전체 예산의 28%나 된다. 김연경 같은 우수 선수를 양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금액만 790억 원이다. 충북 진천군 국가대표훈련장(제2선수촌) 2단계 건립비(1154억 원)는 별도다. 지난해 스포츠토토 판매로 조성한 국민체육진흥기금이 1조924억 원이다. 이 돈으로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주요 경기단체에 3610억 원을 지원했다. 여자대표팀에 고기 한 점 사주지 않은 대한배구협회도 이 돈을 받았다.

영국의 4년 치 스포츠 예산의 갑절 가까운 나랏돈을 한 해에 쓰는데 한국 대표팀은 왜 고깃집도 못 가는 것일까. 답은 부패에 있었다. 배구협회의 경우 2009년 대한체육회 지원금 70억 원에 은행 빚 113억 원을 더해 배구회관 건물을 매입했다. 이때 협회 고위층이 특정 건설업체에 혜택을 주면서 대가로 1억3200만 원을 챙겼다. 그는 올 1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한유도회의 한 임원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받은 현지 활동비를 남겨 개인 용도로 챙겼다가 적발됐다. 대한핸드볼협회는 홍보비로 매년 5000만 원 안팎의 주유상품권을 구입해 임원들끼리 명절 떡값 명목으로 나눠 갖기도 했다.

나랏돈이 새는 일은 체육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가 2006년부터 10년간 연구개발(R&D) 예산으로 140조 원을 썼지만 결과는 ‘기술 무역수지 375억 달러 적자’라는 낙제 성적표다. 이 역시 부패에 원인이 있었다. 한 대학교수는 한국연구재단에 포토샵으로 위조한 견적서로 연구비를 신청했다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적발됐다. 국방부는 병영생활관 현대화 사업에 9년간 6조8000억 원을 쓰고도 예산이 모자란다며 2조6000억 원을 추가 요구했다. 100만 원짜리 침대 60만 개를 샀어도 6000억 원이면 끝냈을 일이다.

이처럼 부패가 만연한 상황에서 성과를 기대한다면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어린 선수들의 식비로 책정된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는데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그건 기적이다. 대한민국 나라살림의 민낯이 이번 올림픽에서 일부나마 드러났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김연경 선수는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에서 보면 ‘왜 저 나라는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도 같은 심정이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리우올림픽#임춘애#uk스포츠#체육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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