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국도 핵무기를 개발 및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다.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뒤엎고 핵무장에 나설 경우 초래될 경제·외교적 제재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도 한국의 핵무장을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한국이 핵을 갖게 되면 일본과 대만도 핵무장에 나서는 등 ‘동북아 핵 도미노’가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핵 빗장’을 열어주는 것은 비확산 질서의 근간을 흔들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고 미국이 보는 까닭이다.
이런 제한 때문에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 공유(Nuclear Sharing) 전략이 북핵 억지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 초 미국은 7000여 기의 전술핵무기를 유럽에서 철수하면서도 소량의 전투기 탑재용 전술핵무기(B-61)를 나토 5개 동맹국(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터키)에 남겼다. 미래 위협에 대비해 비핵 동맹국에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5개국의 미 공군기지 6곳에는 150∼200여 기의 B-61 전술핵무기가 비축돼 있다. 유사시 이 핵무기는 미국과 5개 동맹국의 전투기에 탑재돼 실전에 투입된다. 핵탄두를 작동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는 최종 승인코드는 미국이 통제하지만 5개 동맹국이 탑재 및 투발 수단을 제공해 사실상 ‘50%의 사용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이를 한국에 적용할 경우 전북 군산 미 공군기지 등에 B-61 전술핵무기를 비축했다가 북한의 핵 공격 징후 시 한국 공군의 F-15K 전투기에 신속히 탑재해 출격시켜 대북 억지에 나서는 상황을 상정해볼 수 있다. 한국이 2018년부터 도입하는 F-35A 스텔스 전투기에 탑재할 경우 북한의 레이더망을 피할 수 있어 억지 효과는 배가된다. 전술핵무기 배치 자체가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1990년대 초까지 한국에 배치됐던 전술핵무기는 평시 관리부터 유사시 사용 승인 및 실전 투입까지 주한미군이 도맡아 한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군 고위 당국자는 “지금은 북한의 핵 공격 위협이 현실화됐고, 한국도 강력한 핵 운반 및 투발 수단(최신예 전투기)을 갖춰 나토식 핵 공유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한미 양국이 ‘핵무기 공유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틀 내에서 핵무기 정책협의 참가 및 공동 결정 이행, 전투기 등 핵무기 사용 기술과 관련 장비 유지, 영토 내 핵무기 비축 등을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핵전력을 동맹국 보호 차원에서 사용할 경우 그 정치적 책임과 위험을 공유한다는 게 협정의 원칙이다. B-61 전술핵무기가 비축된 나토 5개 동맹국도 미국과 이 같은 내용의 핵 공유 협정을 맺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 위배 논란을 우려하는 미국이 당장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추가 핵실험에 이어 ‘핵 실전 배치’를 선언하고 한국에서 핵무장론이 고조될 경우 ‘핵 공유’ 방식의 전술핵 배치론도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군 관계자는 “미국이 전략핵무기에 기반을 둔 기존의 ‘확장억지’로는 북핵 저지가 힘들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과 나토 핵 공유 방식의 전술핵 배치를 논의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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