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화해·치유 재단’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서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은 편지를 받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이는 최근 일본 정부가 내놓은 재단금과 별개로 위안부 합의 취지에 맞는 진정성 있는 ‘정서적 위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인데 논란이 불가피하다.
○ “총리 편지가 ‘치유’ 정신에 부합”
18일 재단 관계자는 “피해자들에게 배상·위로금(생존자 1억 원, 사망자 유족 2000만 원)을 전달할 때 동봉할 수 있도록 이르면 10월 내 아베 총리의 편지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은 이달 초 이사회에서 이 같은 방침을 정한 뒤 한일 관계와 외교 분야에 정통한 인사들을 통해 일본 정부에 여러 경로로 편지 작성 의사를 타진했지만 아직 아베 총리의 답변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은 아베 총리가 직접 쓴 편지를 피해 할머니 개개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합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공개석상에서 발표한 총리 명의의 합의문이 편지보다 외교적으론 더 무게감이 크지만 적지 않은 피해 할머니들이 ‘총리가 아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이 대리 사과를 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의 편지가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5년 일본 민간 단체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금’으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모금했을 때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당시 일본 총리가 사죄 편지를 피해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지만 사적(私的) 편지였던 데다 일본 정부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아 무산됐다. 2012년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도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와 주한 일본대사의 면담, 사과를 포함한 합의안을 제시했지만 한국이 거부했다.
전망은 엇갈린다. 일각에선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 등 일본 내에서도 편지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들이 있다는 점을 들어 ‘편지 전달’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일본 정부 차원의 재단금이 전달됐고, 아베 총리가 지지층인 자국 우익 세력의 반발을 우려해 편지 작성을 거부할 거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재단의 움직임에 대해 ‘뒷북’을 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합의를 앞두고 열린 한일 국장급 협의에선 편지 문제도 검토됐지만 최종적으론 일본 외상이 합의문을 읽는 방식만 채택됐다. 또한 재단이 독자적으로 사과 편지를 추진하다가 거부당하면 그에 따른 외교적 파장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 배상금에 ‘세금 폭탄’ 피하기 위해 진땀
이런 가운데 재단금을 집행하기 전 가장 시급한 문제인 배상·위로금의 용처와 전달 방법을 놓고 재단 측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생존한 피해자의 정확한 뜻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7일 김태현 재단 이사장이 경기 용인시의 한 병원에 입원한 이모 할머니(90)를 만났을 때 뇌경색으로 인지·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이 할머니는 ‘한일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엔 “마음이 좋아”라고 답했지만 ‘보상금을 어디에 쓰겠느냐’는 질문엔 “돈 받으면 약 먹고 싶어. 일본 가서 높은 사람 만나고 싶어”라고만 간신히 대답했다. 현재 생존자 40명 중 12명은 치매 등으로 의사 표현이 어렵다.
세금도 문제다. 현행 소득세법상 지정기부금 단체로부터 수령한 현금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적게는 4.4%, 많게는 22%를 소득세로 내야 한다. 따라서 할머니들이 배상·위로금을 수령할 때 많게는 2200만 원을 세금으로 떼일 수 있다. 재단을 관할하는 여성가족부는 “신체, 자유, 명예, 정조 등 인격적 이익의 침해로 지급되는 배상금과 위자료에는 소득세를 매기지 않는다”는 ‘소득세법 집행 기준’을 적용해 위안부 배상·위로금엔 세금을 아예 부과하지 않는 방안을 세무 당국과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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