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2016년은 북한 핵 위협의 실체가 우리 피부에 와 닿은 해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그때 가서 어쩌면 우리는 그해부터라도 이 위협을 덜기 위한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했다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북핵 문제가 불거진 1993년부터 23년 동안, 다섯 번의 정부를 거치면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점에서부터 이 문제를 살펴보고, 대책을 찾는 것이다. 당연히 쉽지 않다. 미북 간의 양자 협상, 햇볕정책, 6자회담, 압박정책, 그 어느 것도 북한의 핵개발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 법하다.
그러나 지난 23년 동안 우리와 국제사회는 북핵을 멈추려는 노력을 얼마나 치열하게 기울였는가. 아쉽게도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다. 달리 보면 북핵 문제는 북의 핵 보유 의지가 외부 세계의 북핵 폐기 의지보다 컸던 데서 기인한다. 북핵으로 인해 치명적인 안보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이 사활적인 의지를 발휘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런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북핵 폐기 의지를 벼리는 것, 그 의지에 걸맞은 사고와 행동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쩌면 북핵 폐기를 위한 방법론보다 의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지금 국면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로 들리겠지만, 북의 핵 보유 논거를 북의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옛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님을 북이 모를 리 없다. 또 입만 열면 나오는 미국 적대시 정책도 북이 만들어낸 환상이고 핑계다. 그럼에도 북의 논리를 북의 시각에서 봐야만 폐기를 위한 초입에 들어갈 수 있다. 북의 논리를 수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상대의 생각을 읽어내야 한다는 손자병법의 교훈을 되새기자는 말이다.
둘째, 북핵 폐기 노력이 미흡했다고 해서 과거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훼손하고 역량을 분산시키는 일이다. 이 시점에 할 일은 책임을 묻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북한 문제는 ‘남남 갈등’의 핵심 이슈인데, 과거 정부의 북핵 정책을 정치 쟁점으로 끌고 가는 것은 ‘적전분열(敵前分裂)’을 일으키는 이적(利敵) 행위에 해당한다.
셋째, 북핵 문제를 보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준별해야 한다. 미국이 생각하는 북핵과 중국이 생각하는 북핵은 다르다. 상황이 변화되면 그 나라들의 생각도 변화한다. 각국의 다양한 이해관계는 각국의 국가 이익 및 국가 전략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이치라면, 그들의 다양하고도 변화하는 이해관계를 읽고 우리의 그것과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입장만을 원론적으로 설득하면 겉으로는 호응해 오겠지만, 그들의 실질적인 행동을 유도할 수 없다.
넷째, 정부 차원에서 유관 부처 간의 긴밀하고도 심도 있는 논의는 당연한 것이지만, 민간 전문가들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데는 부족한 점이 있다. 물론 북핵 문제는 정보와 보안 측면에서 민감하기 때문에 민간과의 협력에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엄중함을 생각한다면 민간의 협력을 구하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특히 국제사회의 북핵 문제 인식과 국제정치 역학관계에 대한 민간의 전문성은 매우 뛰어나다. 다양한 의견을 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북핵 해결 의지를 강화하는 데 필요하다.
다섯째, 북핵 문제가 아무리 위급해도 평화와 통일을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핵무장론, 선제타격론 같은 견해는 북핵 폐기 의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논리는 분단 71년 동안 한반도에서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던 논리다. 그 논리가 없어서 북한이 핵무장을 하려고 했나. 오히려 그런 논리는 북한이 원하는 바다. 안보적으로 강력한 대응 조치는 취하되, 오히려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는 것이 북의 논리를 부수는 데 효과적이다.
늦었다고 판단될 때가 가장 이를 때라는 말이 있다. 또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마주할 북핵은 어떤 상황일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북핵에 맞서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것과 북핵을 폐기하는 것은 동시에 추구해나갈 차원이 다른 문제이지, 상호배타적인 일이 아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