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1시 반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 시 진장(錦江) 가 타이양차이푸(太陽財富)중심 빌딩 16층 ‘단둥훙샹(鴻祥)집단’. 북한과 핵 개발 물질 거래 사실이 밝혀져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훙샹그룹의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1개월 전쯤 내가 이곳에 근무하러 왔을 때도 문은 닫혀 있었다.” 경비원의 말로 짐작건대 훙샹이 중국 당국의 조사로 업무를 중단한 지 적어도 1개월은 넘은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마샤오훙(馬曉紅) 회장도 본 적이 없다고 경비원은 말했다. 훙샹그룹 계열 여행사 등 일부는 영업을 하고 있지만 10여 개 계열사로 이뤄진 훙샹그룹은 당국의 강력한 조사 방침에 존폐 위기감까지 느낀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히고 미국과 함께 훙샹그룹 제재에 나섰다. 하지만 북한의 신의주를 마주한 도시로 북-중 교역의 70%가 이뤄지는 단둥은 얼어붙은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단둥에는 북한행 관광객이 어느 때보다 넘쳐 났다. 압록강 철교로는 하루 통행이 가능한 최대치에 육박하는 화물차가 오가고 있었다. 북한 근로자도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국제사회의 눈치와 당국의 단속 조짐이 보이면 육상 해관(세관) 말고도 강(압록강 중하류)이나 바다(단둥∼서해의 둥강·東港 항)의 밀무역 라인이 가동된다.
“검사가 강화됐다고 하던데….” 단둥 해관에서 만난 중국의 화물차 운전사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누가 그러는데요?”
이날 오전 8시 단둥 시 해관 마당. 중국의 대북 제재와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썰렁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단체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400명은 족히 돼 보였다. “한국 돈과 신문 들고 들어가면 안 돼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 앞에서 비슷한 자세로 사진 찍지 마세요.” 여행 가이드들은 주의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마당 오른쪽에는 강판에서 잡화까지 다양한 물품을 실은 트럭부터 컨테이너 차량, 소형 승용차까지 150여 대가 줄줄이 서서 해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4시간 뒤쯤 다시 현장에 가 봤다. 이번엔 ‘평북’ 번호판을 단 북한 트럭과 10여 명이 탈 수 있는 승합차들이 북에서 건너와 마당을 채웠다.
단둥과 북한 신의주 사이에는 하루짜리 관광만 가능했는데 지난해 1박 2일 코스가, 올해는 무비자로 신의주 강변 일대만 돌아보는 4시간짜리 상품이 생겨 났다. 4시간짜리 상품은 하루 240명 정도로 제한해 시작됐지만 지금은 많을 땐 1000명이 넘는다. 단둥의 렌터카 회사에서는 150위안(약 2만5000원)을 주면 차를 빌려 타고 신의주까지 다녀올 수 있다. 한 소식통은 “관광객 증가로 신의주에는 100달러를 내고 한 달 동안 하루 24시간 무제한 전기를 공급받는 가정이 늘어났다. 야경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북-중 교역 분위기의 지표로 거론되는 단둥 철교 위의 화물차 왕래도 3월 대북 제재 시작 후 하루 100대로 잠시 줄기도 했지만 지금은 300여 대로 거의 ‘풀(full)’ 수준으로 회복됐다. 화물차 크기도 커졌다.
핵 개발 자금 차단을 위해 북한 근로자의 해외 파견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단둥에는 북한 근로자가 넘쳐난다. 현지 교민은 “길에서 한국 사람보다 북한 사람을 더 많이 본다”고 말했다. 올해 북한 근로자 20명을 채용했다는 한 소식통은 “월 300달러에 계약하고 데려온 뒤 절반만 주는 업체도 있다. 그래도 북한은 감지덕지한다”라고 귀띔했다.
훙샹그룹에 대한 제재로 대북 금수(禁輸) 물자 공급이 차단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 동네(단둥)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샤오훙 회장이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게 아니다. 나도 그만한 돈 주면 달라는 것 뭐든 줄 수 있다. 북한에서 금을 못 들여오게 하면 ‘은’이라고 서류 만들면 된다. (단둥 철교를 가리키며) 저기 오가는 화물차를 다 까고 보느냐.”
훙샹을 잡아들여도 북한에 핵 물자를 불법 수출하는 업체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훙샹처럼 조사할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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