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 조직개편은 국민 안전과 경제 부흥이라는 당선인의 국정 철학과 실천 의지를 담고 있다.”
2013년 1월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며 이같이 개편 취지를 소개했다. 당시 인수위가 발표한 정부 조직안은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를 신설하고 통상 조직을 이관하는 등 정권 교체 수준의 대규모여서 눈길을 끌었다. 정부 출범 후 26일이 지나서야 개편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정도로 진통을 겪었지만 정부 조직을 확 바꿔야 한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큰 기대와 함께 우여곡절을 겪으며 새 정부 조직이 출범한 지 이제 3년 8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개편 성과는 기대를 크게 밑돈다. 경주 지진에 대한 부실 대응과 만성적인 경제 저성장을 보게 되면 ‘뭐 하러 그 난리를 치며 그렇게 부처를 뗐다 붙였다 했나’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며 문패를 바꿔 단 안전행정부는 세월호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안전’이라는 이름마저 국민안전처에 넘겨줘야 했다. 국민안전처는 연간 3조 원 넘는 예산을 쓰고 있지만 지진 발생에 재난문자 발송조차 제때 못 해 빈축을 사고 있다. 경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일도 지진 발생 8일 만인 20일 대통령이 경주를 찾아 “선포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에야 결정할 정도로 굼뜨다.
원자력 안전을 책임지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조직 개편에서 차관급으로 강등됐다. 안전이 최고의 가치라는 현 정부의 철학과 다른 결과여서 결정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사안이다. 당시 인수위 관계자는 “신설 부처가 2개라 장관급 수를 늘리지 않아야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공약에 따라 미래부와 해수부를 만들면서 장관 자리가 2개 늘어나 하나를 없앨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시작부터 정부에서 홀대받은 조직이 국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수는 없었다. 20대 국회에서 야당 반대로 본회의에서 부결된 첫 번째 안건이 새누리당이 제출한 신임 원안위원 추천안이었다. 이 때문에 지진으로 월성 원자력발전소 4기가 정지됐는데도 이를 관리할 위원회는 위원 9명 중 5명이 공석인 채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경제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외교부에 있던 통상 기능을 실물경제 부처(현 산업통상자원부)로 옮기는 개편이 단행됐다. “경제적 이슈에 정무적 판단이 개입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에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게 조직 개편의 변이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 정부가 한국산 철강 등에 고율의 반덤핑 상계관세를 매기고 미국 유력 대선 후보가 “한미 FTA를 손보겠다”며 통상 압력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산업부 장관이 수행하며 FTA 협상 검토 및 개시를 정무적 판단으로 추진하는 관행은 그대로다.
신설된 경제부총리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미세먼지 대책 등에서 제대로 된 조율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해수부는 세월호 사고 처리나 조선·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존재감마저 상실한 상태다.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신설된 미래부는 국민에게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만든 부처라는 인상만 남겼다.
이쯤 되면 국민 안전과 경제 부흥이라는 조직 개편의 취지는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조직이 생긴 취지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 주길 당부하고 싶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을 뜯어고쳐 봐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고 푸념해야 하는 국민이 안쓰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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