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다양한 비유와 본인이 즐겨 듣는 노래 가사까지 소개하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한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야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까지 밀어붙인 이상 더 이상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청와대의 기류다.
박 대통령은 먼저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릴 때 한 친구가 “잘 보이지도 않는데 누가 안다고 그러느냐”고 묻자 미켈란젤로가 “내가 알지”라고 답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어 “이처럼 당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스스로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일을 해야 명품 정책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에디슨이 “나는 평생 일상적인 일을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모두 즐거움이었다”고 말한 사례를 들며 “다시 한번 신발 끈을 동여매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모두 함께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국민을 위해 뛰어 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참석자들에게 공직자의 자세를 강조한 말이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끝까지 원칙대로 하겠다’는 박 대통령 본인의 속내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입술도 바짝바짝 마르고 힘들지만 중간에 관둔다고 그럴 수도 없고 끝까지 하자는 내용”이라는 애청곡 ‘달리기’의 가사를 소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본인의 원칙은 “국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만들어 드리고,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희망찬 미래를 선물하는 것이 시대적 소명(召命)”이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북핵 대응과 경제위기 극복에 전념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주변 여건이 어렵다 하더라도 ‘할 수 있다’ ‘해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역사적 소명을 완수해야 한다” “‘일각이 여삼추(짧은 시간이 3년 같다)’가 아니라 ‘삼추가 여일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조급한 마음”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야당은 현안보다 대선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대통령의 인식이다. “20대 국회에 국민들이 바라는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 정치는 시계가 멈춰선 듯하고 정쟁으로 한 발짝도 못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라는 말에서도 이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4·13총선 뒤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겠다”며 3당 대표와의 면담 정례화를 약속하는 등 협치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청와대는 야당이 총선 이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의혹 제기에 이어 최근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의혹을 쏟아내고 김 장관 해임건의안까지 낸 것은 사실상 박 대통령에게 ‘항복’을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한시도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이 박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 중심으로 국정 과제를 마무리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더 힘을 내지 않으면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다시 한번 기적의 드라마를 써 달라”고 호소했다.
향후 정국 대치가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 모두 정국을 풀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수용 거부 방침을 재차 확인한 만큼 이를 뒤집기 어렵고 여당의 태도도 완강하다”며 “그렇다고 야당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갈등 정국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해 청와대와 여야 모두 부담이 큰 만큼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와대로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민생 법안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김 장관 스스로 거취를 정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2003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주도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통과됐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반발했지만 김 장관이 사표를 내 정국이 풀린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 내에선 이런 방안을 거론조차 못하는 게 현재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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