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회는 일요일이었지만 국회법상 ‘협의’의 본뜻을 놓고 정세균 국회의장 측과 새누리당의 옥신각신은 계속됐다. 국회 사무처는 이날 오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국회법 절차를 어떻게 따랐는지 주장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부터 처리까지의 과정을 하나하나 짚으며 23일 밤 정 의장이 차수변경 과정에서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를 거쳐 9월 24일 본회의를 개의했다’라고 밝혔다.
23일 밤 12시 직전 차수변경이 이뤄졌을 때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날치기다. 나와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항의한 데 대한 정 의장의 반론 격이었다. 국회법 77조에 따르면 의장은 의사일정 변경을 위해서는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해야 하는데 정 의장은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25일 “23일 밤 11시 40분경 국회 의사과장이 차수변경안을 담은 문서를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에게 쓱 내밀더라. 이게 어떻게 협의냐”라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새누리당은 직권남용 등으로 정 의장을 형사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의장은 “국회법대로 했는데 무엇이 문제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회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잘못 인식된 측면이 있어서 그렇지 합의기구가 아니다. 협의기구로 다수결에 따르는 게 원칙이다. 국회법 169개조를 봐도 ‘합의’보다 ‘협의’라는 말이 월등히 많다. 그만큼 협의의 형식에 대해서는 의장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많다.
그래서 더욱 정 의장이 ‘법대로’를 강조한 것은 실망스럽다. 의장은 모든 일을 법대로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정치의 전당인 국회에서 정치적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하는 자리다. 충돌하는 여야 사이에서 거중조정의 ‘예술’을 펼치는 자리다. 정 의장이 이번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그런 역할을 다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개회사 파문 때도 그랬고 이번 일도 그렇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중재자의 면모보다 ‘정치인 정세균’의 모습이 더 두드러지는 점은 아쉽다. 해임건의안 표결 때 새누리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했는데도 정 의장은 한 표를 던졌다. 이 역시 국회법대로라고는 해도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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