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에 항의해 단식 중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소속 의원들에게 국정감사에 복귀할 것을 당부했으나 2시간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이 대표는 ‘정세균 사퇴 관철을 위한 새누리당 규탄 결의대회’ 도중 불쑥 “내일부터 국감에 임해 달라”고 말했다. 당황한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표결로 국감 복귀를 무산시켰다. 오히려 의원들이 번갈아 이 대표와 동반 단식을 벌이기로 해 출구가 안 보이는 상황이 됐다.
‘모기 보고 칼 빼기’ 식의 단식에 돌입한 이 대표가 지도부와의 상의도 없이 ‘국감 복귀’를 선언한 것은 전략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의 국감 복귀 선언에는 일말의 충정이 있다.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할 주요 기회를 방기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 당내에서 정 의장에 대한 사퇴 촉구와 국감 정상화를 분리해 투 트랙으로 가자는 유화론이 힘을 얻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 어설프게나마 국감 복귀의 속내를 드러낸 만큼 공은 정 의장에게로 넘어갔다. 정 의장은 어제 “만약 의장이 헌법과 국회법을 어기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지만 지금까지 직무를 수행하면서 헌법과 국회법을 어긴 적이 없다”며 새누리당의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사퇴 요구가 무리하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 의장의 사과와 이 대표의 단식 철회를 동시에 하자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중재안까지 거부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 의장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표결에 부치기 전 차수 변경 등의 과정에서 원내대표들과의 협의 절차를 생략한 것은 검찰에 고발할 사안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또 김 장관 해임건의안 철회를 위해서는 새누리당의 반대급부가 있어야지 ‘맨입’으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말까지 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 의장은 정기국회 개회사에서도 정파적 발언으로 국회를 파행시키지 않았던가. ‘맨입 발언’만으로 사과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국회의장은 다수당의 리더를 겸하는 미국 하원 의장과 달리 중립적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 국회의장이 국회의 교착 상태를 풀려고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강(强) 대 강 대결’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 의장이 이번에는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까지 약속해야 한다. 그것은 국감 정상화는 물론이고 20대 국회 순항을 위해 국회의장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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