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흉흉하다. ‘국운(國運)이 쇠했다’는 말이 돈 지 오래다. 최근에는 ‘미국의 북핵 선제타격이 임박했다’는 괴담까지 돈다. 괴담은 ‘휴전 이래 가장 많은 미군 수뇌부가 한꺼번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는 그럴듯한 추론까지 따라붙는다. 실제 8월에만 미국 태평양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 육군 장관과 해군 장관, 미사일방어청장이 방한했다. 북핵 정책 실패를 자인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다음 달 8일 대통령 선거 전에 선제타격을 결행해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승리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는 정치공학까지 난무한다.
‘선제타격 임박’ 괴담 돌아
꼭 미국 대선 전은 아닐지라도 북핵 선제타격을 괴담으로만 치부해버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의 얘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려는 미국의 첫 번째 목적은 한국에 주둔하는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지키는 것이다. 미국 조야(朝野)는 왜 미국 아들딸을 지키려는 방어 무기의 배치 지역이 공개됐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시위하는 데 배신감까지 느낀다. 미군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미국의 선택은 두 가지다. 선제타격, 아니면 미군 철수다.”
선제타격을 한다면 북의 핵·미사일 공격체계가 완성되기 전에 단행할 것이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굴기(굴起)하려는 중국에 본보기를 보이는 데도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군사력으로는 중국이 아직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일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군의 날 기념사에선 ‘북한 군인과 주민 여러분’에게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만일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실전배치해 선제타격을 당하고도 반격할 수단을 갖추면 얘기는 달라진다. 북한 정권이 입으로는 ‘미국 본토 공격’을 주워섬겨도 실질적인 타깃은 남쪽일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의 직접적인 핵 피해가 가시화하면 철수를 할 수도 있다. 북한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미군이 철수하는 날은 대한민국의 ‘둠스데이(doomsday·운명의 날)’다. 외국 기업과 외국인 투자를 필두로 탈(脫)한국 러시가 벌어질 것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한미동맹 역시 공짜가 아니다.
국운이 벼랑 끝에 걸려 있음에도 내부를 돌아보면 기가 막힌다. 박근혜 정부는 4년 다 되도록 국회와 싸운 기억밖에 나질 않는다. 실적을 내지 못한 관료들은 여의도 탓 좀 그만해야 한다. 누란(累卵)의 위기에 마음을 기댈 지도자도 없다. 국내에선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런 대북제재 국면에 북한에 쌀을 지원하자고 김을 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위 진압용 경찰 살수차에 물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황당한 얘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지지율을 꾸어 빚으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지지율이 안 오르니 별소리를 다 한다.
한미동맹 공짜 아니다
대통령 주변에는 눈을 흐리는 내시(內侍)만 보이고, 심지어 ‘내시’를 자처한 사람도 있다. 대한제국 말기 고종의 총애를 받은 내시 강석호는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대한매일신보’ 논설이 “일인지하(一人之下)요, 만인지상(萬人之上)인 대신들이 강석호가 오면 애걸하고…”라고 개탄할 정도였다(‘제국의 황혼’). 나라가 망하기 2년 전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