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계기로 야권의 폭로전이 본격화됐다.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 퇴임 이후 사저 논란까지 전선을 넓히고 있다.
내년 대선 본경기에 대비한 무차별 폭로전의 예고편인 셈이다. 여권은 즉각 ‘맞불 작전’을 펴고 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판판이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폭로와 맞불이 맞부딪히면서 쟁점은 사라지고 막말만 남는 ‘폭로전의 패턴’도 되풀이되고 있다. 선거는 ‘우호적 지지층을 투표장에 끌어내는 게임’에 비유된다. 팩트(사실)에 기반을 둔 쟁점 논쟁에서 막말 이전투구로 논점이 변질되는 건 이 때문이다. 사실 관계보다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게 지지층 결집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폭로의 정치학’이다.
폭로전의 불을 댕긴 건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는 4일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의 지시로 국가정보원이 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私邸) 터를 물색했다”고 폭로했다. 대통령 사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서울고검 국감장에서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은 퇴임 후 서울 삼성동 사저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국정원이 새로운 사저 터를 물색했다는 박 위원장의 폭로는 사실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교묘한 말 바꾸기와 여권의 강경 공세로 사저 논란은 논점 자체가 바뀌었다. 박 위원장은 6일 “청와대에서 경호실과 국정원이 (사저와 관련해) 협의하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냐”며 “제가 (사저 터 물색에 관여한) 국정원 간부 명단을 공개해야겠느냐”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사저 물색을 국정원에서 하는 건 ‘제2의 내곡동 사건’”이라고도 했다. 사실 관계와 무관하게 사저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는 듯 ‘이미지 공세’에 나선 것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이런 박 위원장을 향해 “훗날 통일이 되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월남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쭝딘주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보좌관이 모두 간첩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박 위원장을 사실상 간첩에 빗댄 셈이다. 폭로전이 막말 논쟁으로 넘어간 순간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김 의원의 성명을 보면 차후 (박 위원장이) 이중간첩으로 드러난다는 협박성 경고가 담겨 있다”며 “이 문제는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없다. 김 의원은 사과하고 이 말을 취소하라”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제가 간첩이라면 정부가 잡아 가고, 신고해서 포상금을 받으라”며 “무능한 정부와 신고도 못하는 꼴통보수 졸장부”라고 되받아쳤다. 국민의당은 김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여권도 물러서지 않았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감이 일부 야당 의원의 근거 없는 폭로와 무책임한 정치공세로 얼룩져 유감”이라며 “(박 위원장이) 자신 있으면 국회나 국감장이 아니라 (면책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밖에 나가 당당히 기자회견을 하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우현 의원은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 과정을 두고) 권력형 비리라는데, 권력형 비리는 김대중 대통령 때 아태 재단”이라고 폭로전에 가세했다.
‘근거 없는 폭로→막말 비방→논점 변질→역(逆)폭로전’ 등 기존 폭로전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대선을 앞두고 여권은 야권을 ‘거짓 선동 프레임’에, 야권은 여권을 ‘부정부패 프레임’에 가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야의 이런 ‘묻지 마 폭로전’이 정치 불신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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