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 행보가 묘한 ‘데자뷔’(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교롭게도 2012년 대선 당시 정적(政敵)인 박근혜 대통령을 ‘벤치마킹’한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다. 여권 관계자는 7일 “문 전 대표를 보고 있으면 4, 5년 전 박 대통령 모습이 오버랩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전날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심포지엄에서 “‘정권교체’와 함께 반드시 ‘경제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도 2012년 대선 당시 줄곧 “‘정권교체’ 수준을 뛰어넘는 ‘시대교체’로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호소했다. 시대교체가 경제교체란 말로 바뀌었지만 정권교체 이상의 변화를 강조한 점은 닮은꼴이다.
문 전 대표는 또 “경제 패러다임의 중심을 국가나 기업에서 국민과 가계로 바꿔 ‘국민이 돈 버는 성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2012년 7월 10일 박 대통령의 대선 출마선언문에 담긴 ‘핵심 철학’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꿔야 한다. 과거에는 국가의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국가 성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의 고리가 끊어졌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국민행복시대’는 이런 철학이 담긴 슬로건이었다. 흥미롭게도 문 전 대표는 올해 7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뒤 귀국 일성으로 ‘국민행복론’을 꺼냈다. “국민에게 행복을 주지 못한다면 정치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4년의 시차를 두고 국민성장과 국민행복이란 공통 화두를 던진 셈이다.
상대 진영의 어젠다를 자신의 가치로 끌어온 점도 똑같다. 문 전 대표는 다른 대선 주자들이 대부분 격차 해소, 즉 분배 담론을 강조할 때 보수 진영의 어젠다인 ‘성장 담론’을 첫 번째 화두로 던졌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이 진보 진영의 어젠다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핵심 과제로 제시한 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을 대선이 2년가량 남은 2010년 12월에 출범시켰다. 문 전 대표도 대선이 1년 2개월 남은 시점에 싱크탱크를 만들었다. 경쟁 후보들에 앞서 선제적으로 대규모 싱크탱크를 띄운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이는 두 사람의 정치적 상황이 유사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당내 대세론은 형성했지만 힘겨운 본선을 앞두고 있어 선제적 인재 영입과 이슈 선점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의 지난 대선 화두를 사실상 차용한 건 박근혜 정부 집권 기간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대세론을 등에 업고 실제 대권을 거머쥔 후보가 드물다는 점에서 문 전 대표가 ‘박근혜 모델’을 성공 케이스로 연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02년 대선 당시 실패한 ‘이회창 모델’ 대신 성공 케이스를 연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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