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대통령정무수석이 어제 “청와대는 지금은 개헌 이슈를 제기할 때가 아니라는 게 확고한 방침”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지난달 교섭단체 연설에서 ‘조건부 개헌론’을 제기하고 3일 ‘진박(진짜 친박)’ 정종섭 의원이 ‘내년 초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공론화에 나서자 청와대가 일종의 ‘쐐기 박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 ‘국감 후 개헌특위 구성 검토’를 언급했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입법기관인 의원들이 개헌 논의를 하겠다는데 인위적으로 저지할 이유는 없다”며 ‘협치’를 위해서도 개헌 논의가 불가피함을 재차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년 전 “민생법안과 경제 살리기에 개헌 논의가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북핵 위기까지 겹친 현재, 개헌 논의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면 임기 중 치적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국가 과제도 챙겨야 한다. 올해 20대 국회가 새로 시작된 만큼 개헌 논의를 한다면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국회 개헌 추진 모임 참여 의원이 개헌 정족수인 200명에 육박한다. 개헌안의 발의권은 대통령과 국회가 다 갖고 있다. 국회의 자연스러운 개헌 논의를 임기를 1년여 앞둔 대통령이 인위적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처럼 개헌 절차를 까다롭게 규정한 경성(硬性)헌법을 가진 프랑스는 1958년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든 이후 지금까지 24차례나 개헌을 했다. 2000년 우파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해 의회 임기와 맞추는 개헌을 단행해 이원집정부제의 폐단인 좌우 동거정부가 생겨날 가능성을 줄였다. 2008년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정부의 긴급 법률 제정권을 제한하는 개헌을 했다.
국회가 개헌을 논의하더라도 내년 대선 전에 마무리하려는 조급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시간 여유를 갖고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의 미래 설계를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