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사이에 한국은 이(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해 불참-기권-찬성-기권으로 가는 지그재그 행보를 걸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북한대학원대 총장)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사진)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의 논란을 생생하게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05년까지는 남북 관계 개선 등을 고려해 불참하거나 결의안에 대해 기권했지만 2006년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시험발사(7월)하고 핵실험(10월)을 하면서 정부의 대북 압박이 진행됐다. 하지만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기류가 바뀌었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결의안 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한 11월 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송 전 장관은 찬성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결의안이 북한 체제에 대한 내정간섭이 될 수 있고, 남북 관계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기권을 주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에 부닥친 송 전 장관이 “찬성과 기권 입장을 병렬해서 지난해(2006년)처럼 대통령의 결심을 받자”고 했을 때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왜 대통령에게 그런 부담을 주느냐며 기권으로 건의하자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서울에선 남북 총리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11월 16일 북한 김영일 총리를 비롯한 남북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했다. 이날 오후 노 대통령 주재하에 송 전 장관,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비서실장, 안보실장 등 5인의 토론을 거친 뒤 노 대통령은 “방금 북한 총리와 송별 오찬을 하고 올라왔는데 바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고 하니 그거 참 그렇네”라며 입장을 잘 정리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송 전 장관이 대통령에게 마지막 호소문을 만들어 대통령 관저로 보내자 이를 본 노 대통령은 다시 회의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송 전 장관이 한국이 나서서 완화시킨 결의안 정도에는 찬성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고 유엔 북측 대표단을 설득하고 있다고 계속 주장하자 김만복 국정원장이 그러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다고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주장했다. 이 때 문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에 갔던 송 전 장관은 백 실장으로부터 북측 반응을 전달받았다. 북측은 “역사적 북남 수뇌회담을 한 후에 반공화국 세력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는 요지의 태도를 나타냈다고 송 전 장관은 전했다. 이런 북한의 반대 의견을 접한 뒤 정부는 결의안에 대한 기권으로 방향을 정리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 관계자는 ‘북한 측에 결의안 의사를 타진했다’는 부분에 대해 13일 “2007년 (정상회담) 직후 10·4 공동선언 내용을 가지고 남북 간 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라며 “그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논의가 됐다면 이해가 되지만 북한인권결의안만을 갖고 물어보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다수의 의견대로 기권으로 합의해서 (대통령에게) 건의하자’고 했다는 대목에 대해선 “회의에서 논의하고, 결론을 내기 때문에 비서실장이 그렇게 지시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북한에 의사를 타진하자’고 나온 대목에 대해 “천만의 말씀이다. 북한인권결의안을 북한이 반대하는데 물어보면 ‘해도 좋다고 하겠냐’”며 “결의안에 대해 남북 통로로 주고받은 것이 없다. 난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