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눈뜨면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에 대한 얘기부터 들린다. 안부 인사도 이 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기 일쑤고 사람을 만나도 “무슨 영향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자동응답기를 틀어 “괜찮다”고 응답하고 싶을 정도다.
이 법이 시행된 지 보름이 지난 시점에서 그 불똥은 사방으로 튀는 양상이다. ‘공직자 등’에 속하는 사람이나 ‘공공기관’의 구성원처럼 법에 명시된 사람들보다 교수들에게 줄 캔 커피를 산 대학생, 카네이션 꽃을 선물하는 학생들이 이 법 때문에 애를 먹거나 혼란을 겪고 있다. 이 법을 만들거나 찬성했던 사람들이 반길 일일까.
12일 점심시간 때 국회 주변의 상가를 둘러봤다. 대관 로비가 활발했던 금융감독원 주변의 음식점들은 한식 양식 가릴 것 없이 “손님이 끊겼다”며 ‘2만 원 메뉴’가 적힌 전단을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모든 식사 자리를 ‘더치페이’로 규제하는 이 법 시행 이후 사회적 비용보다 편익이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평가를 내릴 단계는 아니지만, 형사처벌을 선포한 것에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뒤따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외국 은행에 다니는 한 지인은 “청탁금지법 스트레스를 외국인 은행지점장이 직접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은행 법무팀은 요즘 같은 골프 시즌에 외국인에게도 고객사 직원들과 골프장에서 아예 만나지 말라고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외국 은행도 ‘시범 케이스’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처벌을 두려워한 외국인이 아낀 비용만큼 골프장은 예약 취소로 손해를 봤다. 이런 현장에서 우리 사회가 이 법의 목적인 ‘공정성’과 ‘신뢰’를 얻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부분적인 현상을 침소봉대할 의도는 없다. 단, 법의 목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규제 수단이 적절하지 못하면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군사독재 시절 만들어진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그랬다. 허례허식을 없애겠다며 축의금 부의금 액수까지 규제한 이 법은 지금은 ‘건전가정의례준칙’이라는 대통령령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누구도 잘 지키지 않는다. 사실상 사문화됐다. 가정생활 속속들이 법으로 규제해 시민들이 따르기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법에 의한 규제의 적절성이 결핍되면 목적이 달성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부작용과 악폐를 낳는다. 화재 방지를 위해 제정됐지만 중복 규제로 악명을 떨친 소방 관련법들은 존경하는 직업 1위였던 소방관들을 부패집단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소방법에 걸린 사람들은 법을 지키기보다 차라리 벌금을 무는 쪽을 택했다. 안전을 이유로 아파트 발코니 개조를 금지했던 법은 주민들의 민원과 갈등을 조장하다가 유야무야됐다. 기준 시가를 정해놓지 않았던 토지초과이득세법은 법을 지키며 세금을 낸 사람만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모두 입법 목적이 훌륭했던 법이었다.
청탁금지법이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선 행정당국이 ‘공포 마케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애매해도 걸리면 징역이야” 하는 처벌조항으로 만남을 원천봉쇄하지 말고, 허용되는 행위와 금지되는 행위의 기준을 훨씬 더 명확하게 내놓아 국민들에게 알리라는 것이다. 또 무시무시한 처벌 조항을 아무 때나 휘두르지 말고 최후의 규제 수단으로 쓰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을 만든 국회의 직무유기로 지금 고치지 못하는 법률 조항은 행정부가 시행령이라도 바꿔서 평범한 시민들이 잘 이해하고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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