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대선 불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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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 고어는 맥주를 들이켜며 드레스셔츠가 땀에 흠뻑 젖도록 춤을 췄다. 평소 단정한 모습과는 달리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소매도 말아 올렸다. 여학생 밴드 ‘와일드 캐츠’의 드러머였던 부인 티퍼가 신나게 드럼을 두드렸다. 존 본 조비 등 록 스타들의 노래와 연주에 고어는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며 호응했고 지인들과 하이파이브도 했다. 2000년 12월 13일 저녁 고어가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대선 결과에 승복하는 연설을 한 직후 선거캠프 관계자 등과 다음 날 새벽까지 벌인 쫑파티 풍경이다.

 ▷민주당의 고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맞붙은 그해 대선에선 11월 7일 선거 후 36일 동안 승자를 확정하지 못했다. 당락이 걸린 플로리다 주에서 부시가 간발의 차로 선거인단 25명을 확보하자 민주당은 재검표를 요구했다. 실제로 일부 선거구의 재검표에서 표차가 줄어들면서 주 전체에서 재검표를 하면 결과가 뒤집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 문제로 미국이 둘로 쪼개진 상태에서 연방대법원이 5 대 4로 재검표 중단을 결정하자 고어는 수용했다. 당선보다는 사회 통합이 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1860년 대선에서 스티븐 더글러스가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패배를 공식 인정한 후 패자의 대선 승복 연설이 전통이 됐다. 하지만 19일 3차 TV 토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선 결과에 승복할 것인지에 대해 “그때 가서 보겠다”고 불복을 시사하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는 이미 선거 조작 가능성도 제기한 터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모욕하는 그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가정보원의 2012년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는 등의 발언을 해 대선 불복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여야 간 정쟁이 치열하다. 이대로 가다간 대선 결과 승복 여부에서도 트럼프를 흉내 내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미국 대선#앨 고어#조지 w 부시#에이브러햄 링컨#트럼프#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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