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느닷없는 北-美 접촉… 한미 전략목표 엇박자 없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4일 00시 00분


 미국의 민간 대북(對北) 전문가들과 북한의 외교 당국자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21, 22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중점 논의했다. 민간의 비공식 접촉이라지만 미 정부가 대북 압박과 제재를 전례 없이 강화한 상황에 진행된 사실상의 북-미 간접대화다. 미국 측 참석자로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와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당시 6자회담 차석대표를 맡았던 조지프 디트라니가 나서 예사롭게 넘기기 어렵다. 

 북측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등은 핵보유국 인정과 함께 선(先) 북-미 평화협정, 후(後) 비핵화를, 미 측은 선(先) 비핵화를 강조했다고 한다. 양측이 겉으로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음에도 미국의 한 참석자는 “일부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며 “미국 새 정부와의 공식 협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의미심장하다. 갈루치나 디트라니는 대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인사들로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다음 달 8일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차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개연성이 작지 않다.

 이번 접촉은 클린턴이 집권할 경우를 상정해 미 민주당과 가까운 한반도 전문가와 북측이 서로의 의중을 탐색한 자리로 봐야 한다. 대북 제재와 압박에 힘을 쏟고 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당장 강경한 대북 스탠스를 바꿀 가능성은 작지만 차기 행정부는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20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선 당초 예상과 달리 미 전략 자산의 한반도 부근 상시 순환 배치가 공동성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방부가 사전 브리핑에서 한미 합의를 밝혔음에도 명문화되지 않은 것을 놓고 미 측이 비용 문제나 중국을 자극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 같다는 관측도 있다. 한미 전략목표의 엇박자를 드러낸 것이라면 북한 김정은이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이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직접 교섭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에 대한 비판이 그치지 않았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한미는 향후 대북 압박의 출구전략에 대해 충분히 의견 교환을 해야 한다. 지금은 북에 그릇된 대화 시그널을 줄 때가 아니지만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대비해야만 한다.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한성렬 외무성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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