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에만 치중말고 기본권-통일 조항까지 근본적 개헌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5일 03시 00분


[朴대통령 개헌 제안]1987년 체제 청산
헌법학자 5人의 제언

 
정치권에선 온통 개헌의 키워드로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헌법 전문가들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동아일보가 24일 5명의 헌법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0년 만에 무르익는 개헌 논의인 만큼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권력구조를 손질하는 ‘원포인트 개헌’이 아니라 변화한 시대상과 다가올 시대상까지 반영하는 ‘광의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본권 보장 △통일 대비 △지방자치 등을 개헌 과정에서 담아내야 할 주요 키워드로 꼽았다.
○ 국제 인권 기준으로 기본권 보장…‘정보 인권’ 신설 요구도

 
헌법학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의 필요성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지낸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시지탄(晩時之歎·시기가 늦었음을 한탄함)이지만 지금이라도 물길이 트이니 다행”이라고 했다.

 개헌 과정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으로는 ‘국민 기본권 보장’이 비중 있게 언급됐다. 여전히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김철수 서울대 법학부 명예교수는 “대통령도 언급했듯 아동의 권리는 새로 규정하고, 노인의 권리·알권리 등은 명확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보 인권’을 강조했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정보화 시대에 맞춰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 관련 권리의 틀을 헌법에서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본권을 제대로 정비할 기회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권과 관련해 과거 개헌이 두 달 남짓한 시간에 성급하게 이뤄져 세세하게 검토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와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통일에 대비하는 헌법 필요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만큼 ‘통일’도 개헌 논의에서 비중 있게 다뤄야 할 사안으로 꼽혔다. 문제는 대북 정책을 두고도 이념적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구조 속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른 시간 안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장 교수는 “현실적으로 통일과 관련해 정부 부처나 민간 영역에서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는 것이 문제”라며 “헌법 차원에서 통일 관련 국가기관들의 역할 등을 정밀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통일된’ 통일 준비를 해야 통일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도 “통일은 이제 눈앞에 다가온 시대적 과제”라며 “통일 과정과 그 이후까지 내다본 헌법 조항은 혼란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개헌으로 지방자치 조항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광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방자치는 제헌 헌법 이후 바뀐 게 없다”며 지방자치 조문을 이번 개헌으로 시급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일본에선 지방자치 논의만 20년 넘게 진행됐는데 우리는 아직 기본적인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지방 분권’에 힘을 실은 개헌을 역설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메갈로폴리스(거대한 도시 집중지대)로 나아가는 지금, 분권에 집중하자는 건 시대에 역행하자는 얘기”라며 “통합을 화두로 한 지방자치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 ‘밀실 개헌’ 아닌 여론 수렴 선행돼야

 헌법학자들은 개헌이 되면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5명 중 3명(김철수 신평 이광윤 교수)이 개헌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2명은 답변을 유보했다. ‘의원내각제’가 부각될 것으로 본 의견은 없었다. 이 교수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너무 커 의원내각제는 동력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학자들은 향후 개헌 논의를 ‘권력구조 개편’에 치우치지 말고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기본권 문제 등에 더욱 신경을 써 달라고 요구했다. 이 교수는 “환경 에너지가 전 세계적 현안이니 헌법 조문에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문구를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 수렴을 제대로 해야 향후 개헌이 국민투표 등에서 국민의 관심을 얻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학자들은 “정치권에서 시간에 쫓겨 ‘날치기’로 개헌 주제들을 다루면 성공할 수 없다” “당리당략을 배제하고 충분한 자료를 제시해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유근형 기자
#헌법#개헌#권력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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