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박근혜 대통령의 말, 즉 ‘메시지를 전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말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되거나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그 무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박 대통령은 주요 기념일 경축사 및 기념사, 국회에서의 연설,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 모두 발언 등을 통해 자주 메시지를 밝혀 왔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 주요 국정 과제에 대한 방향 및 평가가 담겨 있다.
여권의 실질적 수장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내기도 한다. “배신의 정치”라는 강렬한 표현으로 여당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만든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청와대는 수석비서관실별로 의견을 종합한 뒤 비서진 회의를 거쳐 초안을 만들고, 다시 박 대통령이 수정하는 등 심혈을 기울인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언론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에게 미리 보내준 것으로 밝혀졌다. 박 대통령은 25일 이를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최 씨의 의견을 들었다”고 했지만 최 씨가 메시지의 실질적 내용에 영향을 미쳤다면 최 씨의 메시지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그동안 박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게 아니라 최 씨 연설을 들은 것이냐”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야당의 비판에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를 보도해 온 기자로서도 참담한 심정이다.
설령 최 씨가 표현을 다듬는 자문 역할만 했다 해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런 공식 직위가 없는 최 씨에게 그런 일을 맡겨야 할 만큼 청와대 비서진은 능력이 없다는 뜻인가. 정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최 씨를 비서로 임명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문건) 유출은 국기 문란”이라고 규정하며 강경 대응했다. 본인이 직접 관련된 이번 사건에는 어떤 기준을 제시할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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