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의 분권형 대통령제 논의… 박 대통령 ‘퇴임 후 영향력’?
개헌정족수 국회재적 3분의 2… 정치공학 담긴 개헌안은 국회 통과 어려워
국정 마무리 성공하려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규명 빠를수록 좋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1년 4개월을 남겨놓고 ‘비선실세(秘線實勢)’ 최순실 의혹이 증폭해가는 시점에 개헌론을 띄웠다. 김재원 정무수석은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시기와 최순실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언론보도가 봇물을 이루는 시점에 개헌론을 터뜨린 것이 순수해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개헌을 제기한 날 공교롭게도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과 인사 내용을 메일로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 최악의 택일(擇日)이 됐다. 개헌 논의의 시동을 건 뒤 하루 만에 최순실 관련 사과문을 발표하는 대통령도 참담했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그냥 놔두고서 여당 의원 전원이 찬성하더라도 야당 의원 70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국회를 통과하는 개헌을 성사시킬 수는 없다. 개헌론이 동력을 받으려면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우병우를 털고 가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국민과 정치권의 공감을 얻는 것이 먼저다.
취임 후 일관되게 “개헌 논의는 국정의 블랙홀”이라며 국회 논의조차 막던 박 대통령은 입장을 180도 전환하는 이유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거론했다. 대선을 치른 다음 날부터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 체제로 인해 정권투쟁이 일상화해 국정과제의 지속적인 추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의 쌍두마차가 위기에 몰린 원인을 정치제도의 결함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의 소통과 리더십의 부족에 기인하는 점은 없는지 겸허하게 돌아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지지했지만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5년 임기를 3년 더 연장하기 위해 중간에 선거를 치러야 하고 그것이 실패하면 4년 단임으로 끝나버리게 된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없는 친박 일각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만지작거린 카드다. 박 대통령도 퇴임 후를 생각한다면 단단한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임기 후를 보장받는 데는 분권형이나 내각책임제에 끌릴 수도 있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지지율이 높은 ‘빅2’가 개헌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의 후보들은 지지율이 고작 2∼5%를 오르내린다. 친박이 문재인을 누를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인 반 총장과 사전에 교감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지지하는 김무성 의원이 “이 정권 출범 이후 오늘이 제일 기쁜 날”이라고 말했는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오스트리아식 분권형은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고 내정을 맡는 총리는 국회에서 뽑는다. 의원내각제는 국민투표를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프랑스식보다 의원내각제적인 요소를 더 많이 담고 있는 오스트리아식이 여권에 매력적인 카드가 될 것이다. 반 총장을 대통령 후보로 염두에 두고 분권형 개헌을 추진한다면 과연 그가 권력을 총리와 분점하는 반쪽짜리 대통령을 선뜻 수락할지 현재로선 의문이다.
완벽한 정치제도란 있을 수도 없고, 권력구조만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은 국가적 낭비다. 통일 지방자치 복지 사법부 개혁 등 필수적인 과제를 담자면 논쟁이 뜨거워지고 임기 말 개헌은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개헌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문재인을 빼고 안철수 손학규 김종인을 엮어 합종연횡을 하는 구상을 할지도 모르지만 정치적 지향과 권력구조에 대한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냥 구상만으로 끝나기 쉽다.
여소야대의 정치구도에서 박 대통령의 퇴임 후 구상이나 친박의 정치공학이 담긴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할 수 없다. 개헌이 성공하려면 정치공학을 배제하고 박 대통령이 말한 대로 “대한민국의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
최순실 우병우에 대한 박 대통령의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에 최순실의 전남편 정윤회가 발탁했던 사람들이 많으니 최순실이 연설문이나 인사내용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대충 짐작할 만하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계속 추락하고 최순실 의혹을 덮는 데 급급하다간 개헌도 물 건너가고 ‘데릴사위’(반기문 총장)의 마음이 흔들려 대선까지 망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원칙주의는 이제 고집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민심을 존중하는 수습책을 내놓지 않으면 개헌의 동력이 꺼져가면서 본격적인 레임덕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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