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규 “박정희 시해 원인 중엔 최태민 비위도”
- 최태민, ‘박근혜’ 이름 팔아 이권개입 및 거액 금품 징수로 치부
- ‘최태민 보고서’에 이름만 7개…자칭 ‘태자마마’에 여성 추문도
- <신동아> 2007년 6월호 ‘박근혜 X파일’ 보도에 檢 ‘압수수색’ 시도
연일 터져 나오는 최순실 씨 관련 의혹에 대한민국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올해 60세인 한 여성이 어떻게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고, 정부와 청와대 인사 개입과 국가 기밀을 보고 받는 등 국정 전반에 깊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은 의혹이라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최 씨의 국정개입 사실을 시인하면서 의혹은 거의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이 최 씨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말했던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 벌어진 셈이다.
세간의 관심은 온통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연결고리인 최 씨의 부친 최태민 목사(1994년 사망)의 과거 행적에 쏠리고 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력에 회의를 품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최 목사의 비위를 꼽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더욱 그렇다.
월간 <신동아>가 2007년 6월호에서 보도한 옛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수사보고서’와 김재규 측 변호인의 ‘항소이유서’ 등을 보면 최 목사의 각종 비위의혹과 함께 박 대통령과 최 목사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김재규 측 변호인 항소이유서 중 최 목사 관련 내용이다.
《피고인(김재규)은 1975년 5월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있는 최태민이라는 자가 사이비 목사이며 자칭 태자마마라고 하고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이 있는데다 여자들과의 추문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일을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더니 박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그런 것까지 하냐?’ 하면서 반문하길래 피고인으로서는 처음에 대통령의 태도를 보고 놀랐으며,
대통령은 큰딸인 박근혜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근혜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여 대통령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조사 후에 최태민이란 자를 총재직에서 물러나게는 했으나 그후 알고보니 근혜가 총재가 되고 그 배후에서 여전히 최태민이 여성봉사단을 조종하면서 이권개입을 하는 등 부당한 짓을 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김 피고인의 ‘큰 영애도 구국여성봉사단에서 손떼는 게 좋습니다. 회계장부도 똑똑히 하게 해야 합니다’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도 있어서,
대통령 주변의 비위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하고 또 대통령 자신 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항소이유 보충서’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
《1.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된 큰 영애의 문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최 목사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신동아>가 공개한 ‘최태민 관련 자료’라는 중앙정보부의 수사보고서를 보면 최 목사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다음은 신동아 보도 내용.
《이 보고서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최태민의 출생, 성장배경, 경력, 박근혜를 만나게 된 과정, 구국여성봉사단 창설 이후의 부정행위 의혹, 여성 추문 등을 A4지 16장 분량으로 상세히 담고 있었다.
보고서의 ‘1. 신원사항’에 따르면 최태민은 1912년 5월5일생(1979년 당시 67세)이며 원적은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서동34번지, 본적은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 532번지,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89-25번지로 돼있다.
보고서가 소개하는 최태민의 특이사항은 그가 7개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의 이름은 최도원(崔道源)에서 이후 최상훈, 최봉수, 최퇴운, 공해남, 방민, 최태민으로 변천했으며 호적 이름의 개명도 최소 1번 이상이었다.
다음은 최태민 수사보고서 전문 중 일부.
[O 使用 姓名 崔道源 (선녀가 지었다는 아명) 崔尙勳 (월남 후 개명, 경찰 육군 및 해병대 비공식문관 재직시 사용) 崔峰壽 (부산 거주시) 崔退雲 (법명, 77.3.9 이전 호적상 성명) 孔亥南 (천주교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 시 사용) 房 敏 (계시에 의해 개명하였다고 자칭) 崔太敏 (75.4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취임계기 개명. 77. 3.9이후 호적상 성명)]
중정 보고서는 이어서 박근혜를 만나기 직전까지의 최태민의 이력을 자세히 기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태민은 1927년 3월 황해도 재령보통학교를 최도원이라는 이름으로 졸업했다. 이어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42년부터 1945년 8월까지 황해도경 고등과장인 서포의 추천으로 ‘황해도경 순사’로 재직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월남해 최상훈이라는 이름으로 강원도경 소속 경찰이 됐다. 이어 47년 3월 대전경찰서 경사, 47년 4월 인천경찰서 경위 (사찰주임)가 됐다가 49년6월, 50년 7월엔 각각 육군 제1사단 헌병대 비공식 문관, 해병대 비공식 문관으로 일한 것으로 되어 있다.
6·25전쟁 때인 51년 3월 최태민은 군에서 나와 최봉수라는 이름으로 사단법인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부산)으로 활동했다. 54년 초 부인 김제복(63)과의 가정불화로 경남 동래군 금화사로 도피, 삭발해 최퇴운이라는 이름의 승려가 됐다.
55년 그는 비인가 학교인 경남 양산군 개운중학교의 교장, 대한농민회 조사부 차장, 전국 불교청년회 부회장, 한국복지사회 건설회(임의단체) 회장이 됐다. 불교계에 인맥을 쌓은 것이 계기가 되어 63년 5월 당시 집권여당인 공화당의 중앙위원에 선임됐다.
그러나 65년 1월 천일창고(주)를 운영하던 최태민은 같은 해 2월15일 서울지검에 의해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입건돼 약 4년간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69년부터는 천주교, 불교, 기독교를 결합한 종교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 해 초 천주교 중림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이어 71년 10월엔 서울 영등포구 방화동 592-7번지 호국사에서 불교, 기독교, 천주교를 복합하여 창업한 영세계의 교리인 ‘영혼합일법’을 주장했다. 또한 방민이라는 이름으로 독경 및 안찰기도를 했다고 한다.
최태민은 74년 5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2동 122-16 박모씨의 집에 전세로 들어와 ‘태자마마’를 자칭했으며, 74년 8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154-5 선 모씨 소유 빌딩 2층(36평)으로 이전해 동일한 행위를 했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보고서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으로 만난 시점은 1975년 3월6일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최태민이 고(故) 육영수 여사를 거론하며 박근혜에게 접근하여 대한구국선교회을 창설한 과정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O 非理 事實 崔太敏은 영혼합일법 등으로 전전하던 75.2말경 朴槿惠에게 3차에 걸쳐 꿈에 ‘陸女史가 나타나 槿惠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
▼ 75.3.6. 朴槿惠와 접견, 당시 교계의 난맥상을 개탄하면서 救國宣敎를 역설 끝에
▼ 75.4.29 朴槿惠의 후원으로 자신의 심복 중심으로
大韓救國宣敎會 (76.12.10 救國奉仕團, 79.5.1 새마음 奉仕團으로 각 개칭)을 설립하고
總裁(朴槿惠는 名譽總裁)로 취임하여 救國宣敎를 OO(해독불가), 매사 朴槿惠 명의를 매명하여 이권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금품징수 등 이권단체화로 치부…]
보고서는 여성 추문 의혹과 관련해선 12건의 내용을 기록했다. 김재규의 항소이유서와 이 수사보고서엔 ‘자칭 태자마마’ ‘사이비 목사’ ‘사기’ ‘횡령’ ‘이권개입’ ‘회계’ ‘부정행위’ ‘최태민’ ‘구국봉사단’ ‘추문’ 등 구체적 용어나 표현이 무수히 겹쳐 있다.
김재규의 항소이유서는 이 수사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에서 핵심적 메시지만 간추려 정리한 것이며, 이 수사보고서는 김재규 항소이유서의 근거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신동아>는 이 보도 이후 당시 당내 대선경선에 나섰던 박근혜 후보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수사를 이유로 취재 기자 2명의 e메일 목록과 내용을 확보하기 위해 두 차례 동아미디어센터 전산실 서버 압수수색을 시도했다가 기자들의 저지로 실패했다.
40여전 년 박정희 정권 시절, 대한구국선교회를 설립해 각종 비위를 저지른 의혹을 받았던 최 목사. 그리고 현 박근혜 정권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을 설립해 국내외를 오가며 각종 비위를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 이들 최 씨 부녀의 비위의혹은 시대를 건너 뛰어 비슷한 패턴이 전개된다는 ‘평행이론’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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