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섭 저서 “대통령 범죄 언제나 수사할 수 있어야”
- 정관계 비호 은폐세력 찾아내 처벌해야
10월 26일. 시대의 변곡점마다 한 인간의 종언을 고했던 날, 또 다른 시대와 인간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는 총성과 함께 스러졌지만, 또 다른 한 시대는 총성 한 방 없이 안에서부터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안중근과 김재규의 총성은 들리지 않지만 국민의 한숨은 대포소리를 넘는다.
그리고 우리는 반세기를 넘어 대한민국을 현혹했던 ‘박정희 신화’가 역사 속에서 망령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 와중에 생긴 부끄러움은 대통령도, 각료도, 여당의원도 아닌 시민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을 가진 사람을 둘러싼 추문을 덮어보려, 한 쪽에선 ‘내통’으로 한 쪽에선 ‘개헌’으로 불을 지펴 연기를 피웠지만 이미 들불은 광야를 덮었다. 하물며 막장 드라마의 온갖 요소를 갖춘 해괴한 의혹들이 번번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으니 사람들의 분노와 관심을 돌리려는 술수가 먹히기엔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그 와중에도 경찰은 아비 시절에 고문을 당하고 딸 시대에 억울하게 세상을 뜬 이의 시신을 압수하고자 병원 앞에 깔렸고, 마지못해 최순실이란 ‘거룩한’ 이름을 입에 올린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녹화 사과’로 다시 한번 시민을 경악에 빠뜨렸다.
공영방송은 여전히 ‘사실’이나 ‘순실’보다 ‘사과’를 앞세웠지만, 그 거짓의 실체가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형국이니 이를 어찌할까.
눈치 빠른 검찰은 전경련과 미르재단, 최순실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컴퓨터가 미리 검찰 손에 들어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시민들의 안도가 뭘 의미하는지 부끄러워하기도 전에.
스스로도 이제 더 이상 정상적 업무를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배신은 아버지 세대에 겪은 것으로 족하다는 고집 때문에.
비슷한 이가 또 있다. 패배가 분명해진 미국의 트럼프 말이다. 그의 심리를 분석한 NYT는 트럼프가 Δ패배와 굴욕·무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Δ언론보도에 집착하며 Δ싸움을 좋아하고 Δ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고 분석했다.
미국이야 대통령으로 뽑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이미 대통령이 돼 있으니, 문제는 나라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대체 외국에서 대한민국의 국격과 정치를 뭐라고 생각할 것인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법대로 해야 할 일이다. 녹화된 기자회견을 통해 이미 불법행위와 범죄행위의 일부를 자백한 바 있으니 적용할 법도 분명하다. ‘여왕’에게 충성을 다했던 정종섭 의원(전 행정자치부장관)조차 이미 수년 전에 그의 교과서에 친절히 그 절차를 설명해 두었으니 어렵지도 않다.
“(헌법 제84조에서 정하는 대통령의 형사상불소추특권은) 법원의 재판을 전제로 하는 공소제기와 이와 연관된 체포나 구속이 금지되는 것이므로 수사기관의 수사는 가능하다. 따라서 대통령이 내란이나 외환의 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 경우에 수사기관은 수사를 할 수 있다. 수사를 하는 이상 수사의 방법으로 압수, 수색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간이 경과하면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우므로 대통령의 재직 중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언제나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대통령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독립한 특별수사기관(예컨대 특검)으로 하여금 수사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정종섭, 헌법학원론, 박영사, 2014, 1221쪽)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입수하고 일부 수정하기도 했다는 사실과, 최씨에게 정부의 문건이 전달된 사실을 박 대통령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중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은 자백했다.
국회는 탄핵을 준비하고 검찰은 수사를 해야 한다. 미진하다면 국정조사와 특검을 거칠 수도 있겠다. 그것만으로 그칠 일인가. 지난 4년 동안 뻔한 사실을 감추려 정권의 돌격대 노릇을 한 일부 정치세력과 검찰, 사법부, 정보기관, 언론 등의 핵심요원은 누구인지 만천하에 드러나야 한다. 국민은 이미 너무 많이 속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