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4명,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정치권과 여론의 인적 쇄신 요구에 1차 응답한 결과다. ‘최순실 사태’ 수습을 위한 박 대통령의 행보가 본격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28일 밤늦게 수석비서관 전원과 ‘3인방’에 대한 사표 제출을 지시하면서 청와대 인적 쇄신은 본격화됐다. 검찰이 전날부터 이틀에 걸쳐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후임자 선정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인사가 다소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참모들의 사표를 받아들였다.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참모들의 사표부터 수리한 건 2013년 취임 이후 처음이다.
박 대통령이 다른 수석들에 앞서 민정수석부터 내정한 것은 후속 비서진 인선은 물론이고 개각을 위한 인사 검증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워낙 엄중한 상황이고 새 비서진과 개각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교체 대상으로 꼽혀 온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주도하기는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최재경 민정수석 내정자는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 출신으로, 검찰에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뜻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이날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여당의 압박에 박 대통령이 ‘핵심 참모 8명 사표 수리’로 대응했을 수 있지만, 당청(黨靑) 간의 교감 아래 중립내각 요구와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거의 동시에 내놨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28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독대를 하면서 이번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대통령민정수석 교체→청와대 참모진 정비→총리 교체→총리와 협의해 개각’ 순으로 이어지는 인적 쇄신을 통해 이번 사태를 추스르는 것으로 박 대통령이 방향을 잡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비서실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및 여권 원로들과 정국 운영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날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상임고문들을 초청한 자리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참석한 점 등을 들어 김 전 실장의 역할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이날 사표가 수리된 참모들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해서는 7월부터 각종 의혹이 제기됐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됐지만 박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사람을 자를 수 없다”며 야권의 교체 요구를 거부해 왔다. 우 전 수석은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야권의 거센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도 퇴진하지 않았지만 결국 ‘최순실 사태’는 피하지 못했다.
2014년 6월부터 경제수석과 정책조정수석으로 일해 온 안종범 전 수석은 청와대 내에서 ‘왕(王)수석’으로 불리며 정책 전반과 정무적 사안까지 관여해 온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이었으나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재원 전 정무수석은 국정감사 후 개헌 카드로 청와대의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려 했지만 최순실 쓰나미에 휩쓸려 4개월여 만에 퇴진하게 됐다.
5월 취임한 이원종 전 비서실장은 4·13총선에서 여당 참패 이후 혼란스러웠던 청와대를 그런대로 잘 추슬러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감 때 ‘봉건시대’ 발언 이후 홍역을 치른 이 전 실장은 기자들에게 “저 자신도 반듯하게 일해 보려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으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제 관심은 누가 이들의 빈자리를 채울 것인지로 옮아가고 있지만 후임 비서실장 등 청와대 인선이 길어질 수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2선 후퇴와 거국내각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청와대에 들어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역할을 하려 하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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