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는 외신들이 한국을 사적(私的) 관계가 지배하는 ‘정실(情實) 자본주의’ 사회로 묘사하는 분위기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태민은 베일에 가린 종교지도자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멘토”라며 “최 씨 일가가 대통령의 권위를 이용해 기업의 돈을 빼내 온 의혹이 있다”고 정리했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는 “샤머니즘적 숭배와 관련된 스캔들이 한국 대통령을 위협 중”이라고 전했다. 시장경제 원칙과 동떨어진 정실 자본주의, 비합리적 샤머니즘이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고 알려지면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어떻게 볼지 모골이 송연하다.
무디스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같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지금까지 한국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과 중장기 통일 시나리오를 높게 평가해 왔다. 경제와 외교 분야는 대통령의 의지를 핵심 엔진 삼아 추진된다. 이 엔진이 멈추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 정책이 사적 관계에 좌우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순간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을 본격적으로 물어뜯을 가능성이 있다.
어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열 달이나 끌어온 ‘조선·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며 현재의 빅3 체제 유지를 발표했다. 부실 덩어리 대우조선을 안고 가면서 2020년까지 11조 원을 퍼붓겠다니 차기 정부로 시한폭탄을 넘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들은 “성과연봉제에도 최순실이 개입됐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고 있다”며 성과연봉제 포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9월 소매 판매는 5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고 생산과 투자마저 감소세로 돌아선 총체적 난국인데도 무기력증에 빠진 관료들은 일손을 놓은 채 개각과 후속 인사에만 관심을 쏟는 모습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국제 신용평가사와 해외 기관투자가 1000여 명에게 e메일을 보내 국가신인도를 관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악의적 외신 보도로 한국 위기설이 증폭되자 기획재정부는 신용평가기관을 찾아다니면서 펀더멘털(경제 기초)을 홍보했다. 유일호 부총리는 외신 대상 특별브리핑이나 국제 신용평가기관과 소통을 하고 있는가.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안보 상황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한중일 정상회의를 포함한 민감한 외교 현안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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