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모금 지시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모든 일은 박근혜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한 것이고 최순실 씨와 박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안 전 수석 등 청와대 측이 ‘두 재단 모금에 힘을 써 달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으나 안 전 수석 자신도 ‘하수인’이며 대통령 뒤에 ‘비선 실세’ 최 씨가 있다는 충격적 폭로다.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와 손잡고 청와대 권력을 이용해 기업에서 강제로 돈을 뜯어내는 정권 차원의 ‘권력형 비리’를 자행한 것이 된다.
8월 당시 안 수석이 두 재단 설립의 불법 모금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래 그는 이 부회장으로부터 사후 보고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최 씨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해 2월 기업인들을 모신 자리에서 투자 확대를 부탁드렸다”면서도 “기업들이 뜻을 모아 만들게 된 것이 두 재단”이라며 강제 모금을 부인했다. 안 전 수석은 오늘 검찰 소환을 앞두고 ‘몸통’은 박 대통령과 최 씨이고 자신은 ‘깃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최순실 직거래’ 발언은 안 전 수석이 최 씨의 존재뿐 아니라 박 대통령과 최 씨의 유착관계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성균관대 교수 출신의 공직자로서 대통령의 지시가 권력형 비리라는 점을 몰랐을 리 없다. 국가를 생각하고 대통령을 위하는 공직자라면 대통령의 부정한 지시에 “안 된다”고 직언했어야 옳다. 자리 보전을 위해서든, 권력에 취해서든, 혹은 충성심에서든 부당한 지시에 복종하고 국정감사에서 위증까지 한 그가 뒤늦게 고백하다니 개탄스럽다. 박 대통령의 권력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자 제 살길을 찾겠다는 모습이어서 내부 고발자의 양심선언으로 봐주기도 어렵다.
안 전 수석은 두 재단의 출연금 774억 원을 강제 모금한 뒤에도 최 씨와 함께 SK그룹에 80억 원, 롯데그룹에 70억 원을 요구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최 씨와 박 대통령 간의 직거래뿐 아니라 최순실-안종범의 직거래도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경제와 정책 전반을 컨트롤해야 할 정책조정수석이 기업들로부터 더러운 방법으로 돈을 걷는 데 매달렸으니 오늘날 한국 경제가 이 모양이고, 정경유착과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검찰은 안 전 수석 조사에 이어 박 대통령과 최 씨 중 누가 재단 설립을 기획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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