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확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핵심 참모들마저 모두 떠나보낸 ‘고립무원(孤立無援·고립돼 구원을 받을 데가 없음)’의 처지가 됐다. 늘 강인하고 차분한 자세를 유지했던 박 대통령은 최근 들어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일 청와대에서 주한 독일대사 등에게 신임장을 받는 자리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안색은 좋지 않았다. 행사장에 들어올 때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는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공식 일정을 가진 것은 닷새 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 혼자 이번 사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많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새누리당 상임고문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자문할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은 평상심을 유지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의연하고 침착한 모습이라 다소 놀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하루 뒤인 지난달 30일 오후 이홍구 고건 전 국무총리 등 시민사회 원로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상당히 가라앉은 분위기로 때때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은 이날 구체적인 사안을 지적하기보다는 “언론과 국회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 달라”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판단해 달라”는 등의 조언을 했다. 박 대통령은 “늦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면서도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고 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예상보다 더 의기소침한 모습이라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면담 직전까지 “단단히 쓴소리를 해야겠다”던 몇몇 참석자도 박 대통령의 침통한 표정에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혼잣말처럼 “제가 사교(邪敎·사회에 해를 끼치는 종교)에 빠졌다고까지 하더군요”라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씨와 ‘종교적인 배경’으로 연결됐다”는 일각의 주장에 답답한 심경을 밝히면서 적극 부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 직원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연일 제기되는 의혹에 해명이나 반박을 하기보다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 검찰에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고, 안 전 수석이 2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다는 소식에 한숨을 쉬는 직원이 적지 않았다.
한편 2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는 김규현 대통령외교안보수석이 공석인 대통령비서실장 대행 자격으로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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