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아프다. 정신적으로 균형감을 잃었다. 나는 올 1월 본 칼럼에 “박 대통령의 대면접촉 기피가 업무 효율보다 고독에 인이 박여 굳어진 성격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썼다. 말미를 “대통령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았는지, 수시로 전문의 상담을 받는 미국의 예를 참고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로 끝냈다. 칼럼이 게재된 날 오후 청와대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음…. 마지막 문장이 걸리네요. 대통령께 정신과 전문의 상담을 받으라고 하는 건 좀….”
청와대 항의 전화 걸려와
2003년 프랑스에서 당시 71세이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보청기 사용 여부를 두고 정가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시라크가 보청기를 상시 착용하느냐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가수반의 건강은 서구 선진국에선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한국에선 대통령에 오른 다음의 건강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는 격무인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대통령의 건강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의 정신 건강 문제는 더 조심스럽다. 한국에선 일반인도 신경정신과 진료 사실은 쉬쉬하는 터에 대통령의 정신 건강은 금단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현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정신 건강은 육체적 건강보다 더 중요하다고 나는 본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대인관계에 장애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부 기자 시절 “박근혜 의원이 올림머리를 풀고 나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실제 현직 대통령(이명박)과 현직 당 총재(이회창)도 급한 일로 저녁에 박 의원과 연락하려 했으나 끝내 통화가 되지 않은 일도 있다. 그런 박근혜 의원·대통령을 최태민 일족과 정윤회, 문고리 3인방이 둘러싸 장막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공주로 지내다 부모를 모두 총탄에 보낸 트라우마, 10·26부터 정계 데뷔까지 이어진 18년의 ‘절대 고독’이 그를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맺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보수 유권자들은 그런 대통령이 ‘짠’했다. 취임 초부터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임명,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 같은 황당한 인사를 해도, 아마추어처럼 국정을 운영해도 최후의 지지를 거두지 않은 데는 그런 연민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뒤에 최태민과 그 딸들이 있었다니, 연민은 하루아침에 배신의 쓰나미로 밀려들었다. 당장 잘라야 할 사람을 ‘정권 흔들기’라고 지켜내고, 이상한 사람들을 중용하며 ‘결정 장애’라고 불릴 정도로 주요 결정을 미뤄 국정을 망친 대통령의 뒤에 최순실이 있었다니…. ‘배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배신당한 것이다.
대통령의 ‘정신적 下野’
본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애독서 ‘정관정요(貞觀政要)’를 인용해 “군주가 밝은 것은 두루 여러 사람의 말을 듣기 때문이고, 우매한 것은 한쪽 말만 편벽되게 듣기 때문”이라고 쓴 바 있다. 정관정요 10권 군덕론(君德論)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주는 배,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정관정요’를 깊이 새겼다면 물(국민)이 배(대통령)를 뒤집는 이런 상황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의 ‘정신적 하야(下野)’ 상태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 현행 헌법상 대통령제의 한계다. ‘덜컥 개각’으로 현 난국이 수습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박근혜, 과연 어떤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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