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령군 뺨치는 ‘최순실 스캔들’… 참모진 왜 진작 직언 못 했나
대통령에게 진실 고하지 않는 건 대통령을 그르치는 행위
북핵 완성 앞둔 국가 비상시국, 진상 규명 없이는 해결도 없다… 박 대통령 책임지는 자세 보여야
‘최순실 게이트’의 회오리바람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지는 가운데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 대통령 최측근인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한 4명의 수석비서관이 경질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51.6%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된 박 대통령의 인기도가 10%대로 떨어진 것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크게 불행한 일이다. 현재 머리 위에는 북핵을 이고 있고 눈앞에는 추락하는 국가경제가 어른거리는 이 나라가 최고통치자마저 리더십 위기로 비틀거리고 있는 것은 문자 그대로 국가 비상사태다.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은 머지않아 밝혀지겠지만 언론에 보도된 그의 행적은 조선 말 명성황후 옆에서 국정을 농단한 요사스러운 거물급 무녀인 진령군(眞靈君·일명 神靈君)과 비슷하다. 문제는 청와대 보좌진이 어쩌다가 이런 여성이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를 이용해서 국정을 농단하도록 방치했느냐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때는 청와대에 대통령 친인척을 감시하는 비서관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시골에 있는 박 대통령의 조카를 서울의 어떤 사업가가 불러올려 자신의 회사 회장으로 모신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을 담당 비서관으로부터 보고받은 박 대통령은 즉각 조카를 시골로 보내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 조카는 “삼촌이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조카의 취직 자리를 빼앗는 법이 있느냐”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같은 엄격한 청와대 전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동안 최순실의 엄청난 국정 농단이 가능했을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의 일부 보좌진은 그의 일탈행위를 막기는커녕 이를 방조하고 반대급부로 출세하고 또 그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대통령과 비서실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주 회자되는 것이 ‘럼즈펠드 규칙’이다. 이 규칙은 두 차례나 미국 국방장관을 지내고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일한 도널드 럼즈펠드가 만든, 공직자가 지켜야 할 수칙이다. 포드 대통령은 그 내용에 공감해 이 수칙들을 ‘럼즈펠드 규칙(Rumsfeld's Rules)’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모든 백악관 비서들에게 돌리라고 지시했다. 역시 그 대통령에 그 비서실장이다.
전문 8개 장으로 된 이 규칙에는 백악관 근무자들에게 적용되는 3개 장이 있는데 그중 흥미 있는 항목들은 이렇다.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대통령에게 큰 소리로 자유롭게 말하기로 대통령과 양해가 되어 있고, 또한 그럴 용기가 있지 않는 한 백악관의 자리를 수락하거나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에 찬성치 않거나 대통령이 그 문제의 핵심적인 측면을 감안하지 않고 그런 지시를 결정했다고 의심할 때는 그 지시에 자동적으로 복종하지 말라.’ ‘대통령과 가까이 있어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그에게 나쁜 뉴스들을 전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진실을 고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대통령을 그르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주변에는 자기 직을 걸고 용감하게 직언하는 충신이 없었다는 말인가. 물론 청와대 비서실이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그 어느 누구보다 박 대통령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반대를 잘 용납하지 않는 그의 폐쇄적인 성격 탓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결론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충신보다 간신들이 설친다.
국민은 ‘최순실 쇼크’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하루빨리 엄정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잘못이 밝혀지면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북한이 핵개발의 완성 단계에 온 국가 비상상황에서 헌정 중단사태만은 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에 관해 자진해서 조사를 받은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자발적으로 조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야 정치권 역시 국가 비상사태를 맞아 당파적 이해에 얽매이지 말고 국정이 하루빨리 정상화되도록 위기 수습에 협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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