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일 국무총리를 비롯한 개각을 발표함으로써 ‘최순실 사태’ 수습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청와대 참모들은 “신임 총리가 임명되면 내치를 전담하고 박 대통령은 외치만 맡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치에 관해서는 ‘2선 후퇴’라는 해석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부분 이양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에선 ‘마이웨이’ 스타일이 또 드러났다는 시각이다.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정면 돌파로 국정 난맥이 더 심각해졌다”는 여론의 역풍이 불면서 정국이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 역풍 맞는 승부수
청와대의 한 참모는 “박 대통령이 앞으로 정국을 주도하기 어렵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날 총리 교체를 발표한 것은 총리 및 장관 임명을 비롯한 국정 운영의 전권을 국회에 넘기라는 야당 방식의 거국내각에 대해서는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낙점하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았기 때문에 야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라고 봤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각의 내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야당과 협의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개헌론자인 김 후보자가 개헌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청와대 내에서도 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 인선 작업을 마무리한 뒤 개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국정 공백 장기화는 막아야 한다”며 개각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순실 사태 속에 경제 위기가 가중되면서 원로들과 재계에서 “경제사령탑 교체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도 개각 시계가 빨라진 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또 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하야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날 내일신문과 디오피니언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9.2%, 박 대통령의 하야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67.3%였다. 검찰의 칼끝이 점점 박 대통령을 향하면서 ‘박 대통령을 직접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야당은 청와대의 ‘불통’을 지적했다. 청와대는 이날 개각 발표 전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에게 ‘곧 개각이 있을 것’이라고 문자메시지로 알린 뒤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야당 지도부가 받지 않자 다시 개각 내용을 상세하게 문자로 알렸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문자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이 먼저 “책임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준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면서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한 진솔한 사과가 선행됐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야당의 반발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진의가 알려지면 여론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른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3일 기자회견에서 책임 총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 등을 설명하면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인적 개편 완료 뒤 추가 입장 표명 가능성
박 대통령은 당분간 인적 개편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다른 참모는 “현재 공석인 대통령비서실장과 정책조정수석, 정무수석비서관에 대한 인선을 이번 주에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총리가 임명되면 협의를 거쳐 추가 개각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후 최 씨 수사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면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추가로 밝힐 것으로 청와대와 여권은 전망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나도 조사를 받겠다’고 밝힐 수도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 진영과 야당의 요구대로 박 대통령이 탈당을 하면서 정치권과 선을 긋는 것도 수습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까지 탈당 요구에 동조하고 나설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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