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직전 점쟁이를 찾아갔다. 김일성대에서 6년 동안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할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주체사상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건만 목숨 걸 순간이 되니 그따윈 소용없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인 건 알겠는데, 주체사상은 내일 내가 죽을지 살지를 알려주지는 않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때 지인이 “용한 점쟁이가 있다”며 나를 점쟁이에게 데려갔다. 40대 중반 여성 점쟁이의 말 중에 “먼 길 떠날 팔자야. 물 건너가면 크게 되겠어.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 확 들어왔다. 속으론 “내가 강 넘으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하고 기겁했다. 점 본 값은 쌀 2kg가량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그 과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에 잡혀가 고문을 받을 때조차 “용한 점쟁이가 물 건너가 크게 될 팔자라고 했으니 여기서 죽을 팔자는 아닐 거야”라고 믿으며 의지를 가다듬었다. 쌀 2kg 값에 잘될 것이란 굳은 믿음을 가졌으니 결과적으로 손해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