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는 2일 기자들을 만나 극도로 말을 아꼈다. “정국이 빠르게 변해 많은 분의 의견을 듣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후보자는 3일 정식 기자간담회를 열겠다고 했다. 여기서 ‘깜짝 제안’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지명 수락 유보하고 국회로 공 넘길 수도”
김 후보자는 2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들을 만나 시종 환하게 웃으며 여유를 보였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였다. 당초 오후 2시 기자간담회를 예고했지만 김 후보자는 30분 늦게 나타났다. 이어 기자들의 거의 모든 질문에 “내일(3일) 말씀드리겠다”고만 했다.
다만 이날 오후 자신이 재직 중인 국민대에선 “상당한 권한을 위임하고 국정의 책임을 다할 총리를 지명하면서 단순히 전화로 했겠느냐”며 박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을 공개했다. 총리 후보자로 통보받은 시점은 “일요일(지난달 30일)쯤”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4명,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청와대 인적 쇄신과 함께 곧바로 개각을 구상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야권이 즉각 ‘인사청문회 보이콧’을 내걸고 개각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김 후보자의 부담은 커졌다. 김 후보자는 “지금 이 시국에 (야권이) 어떻게 반대를 안 할 수 있겠느냐. 반대가 아니라 분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총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에 저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김 후보자는 부총리에 이어 총리도 낙마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7월 교육부총리로 임명됐지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논문 표절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해 13일 만에 물러났다.
이 때문에 김 후보자가 3일 기자간담회에서 총리 지명 수락을 유보하고 여야에 자신의 지명 문제를 협의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거국중립내각이 국정 공백을 메울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날 개헌토론회에서 “대통령이 지금 상황에서는 2선으로 물러났으면 좋겠다. 안보와 외교만 담당하는 그런 선으로 물러서고, 내정은 책임총리 시스템으로 가면 좋겠다. 개헌에 앞서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실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박 대통령의 ‘2선 퇴진’과 내치(內治)를 총리가 총괄하는 책임총리제 시행을 요구했고, 이를 다시 한번 확답받기 위해 기자간담회를 3일로 연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배성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2선 퇴진이라는 해석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김 후보자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 ‘원조 친노’지만 친노와 각 세워
문제는 야권 주류인 친노(친노무현) 진영이 김 후보자와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 후보자는 199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특강을 하며 인연을 맺은 ‘원조 친노’이자 노 전 대통령의 ‘정책 책사’였다. 하지만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친노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김 후보자는 친노 좌장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김 후보자는 2012년 총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를 향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2015년 11월 동아일보 칼럼에선 “(문 전 대표를) 실제로 잘 모른다. 이를테면 경제·산업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고 썼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후임으로 김 후보자를 영입해 수락 의사까지 받아놓은 상태에서 김 후보자가 총리로 지명되자 떨떠름한 표정이다. 여권에선 “김 후보자가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를 나온 데다 박 대통령의 본관인 경북 고령 출신인 점도 총리 낙점의 이유가 아니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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