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60)의 구속영장 혐의에는 최 씨가 청와대를 등에 업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주무른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검찰은 공무원 신분이 아닌 최 씨에게 ‘직권 남용 권리행사 방해’의 혐의를 적용했다. 힘 있는 공무원을 명목상 앞세워 불법적으로 다른 기관을 주물렀단 뜻이다. 검찰은 앞장선 공무원으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을 지목했다.
이틀째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도 최 씨는 본인의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수석 역시 2일 검찰 출석 전까지 최 씨의 존재를 몰랐다고 항변했다.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은 롯데 등 대기업 관계자들과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은 둘 사이의 관계를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검찰은 안 전 수석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게 압력을 가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모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774억 원에 이르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최 씨가 개입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 씨가 안 전 수석과 모의했다는 취지다. 최 씨가 실소유한 업체인 더블루케이와 그랜드코리아레저(GKL) 간 에이전트 계약,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에서 70억 원을 추가로 출연받았다가 돌려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을 출연한 대기업 53곳의 관계자들을 차례로 불러 자금 제공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최 씨가 K스포츠재단의 돈을 어떻게 더블루케이로 빼돌리려 했는지도 윤곽이 드러났다. 더블루케이는 K스포츠재단에 각각 4억 원, 3억 원의 비용이 드는 연구용역을 수행하겠다고 제안했다. 더블루케이는 기본적인 연구제안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없는 회사였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사기 미수 혐의가 적용됐다.
안 전 수석이 최근 측근에게 “재단 일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직거래한 것이다”라고 토로한 것에 비춰 볼 때 그는 이날 검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개입 정도를 자세히 진술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도 최 씨와 안 전 수석 사이에 박 대통령이 없다면 직권 남용이 이뤄지는 과정을 온전히 설명하기 힘들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은 이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송성각 전 원장(58), 부원장, 임원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47)의 측근인 송 씨는 차 씨의 입김 덕분에 원장으로 임명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날 압수수색은 지난해 6월 차 씨 측근들이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인 포레카를 인수한 중소광고대행사 C사의 지분을 강제로 매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 확보를 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송 씨는 매도를 거부하는 C사에 ‘세무조사’를 운운하며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차 씨와 송 씨에게 공동으로 협박해 회사를 빼앗으려 한 것에 대해 공동공갈미수 혐의 등을 적용할 방침이다.
법조계에서는 범정부적으로 최 씨를 지원한 의혹의 실체를 온전히 밝히는 과정에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 씨와 그의 측근이 주도한 각종 사업에는 물적 지원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최 씨 일당이 문화체육관광부를 장악했더라도 예산이 없으면 관련 사업을 지원할 수 없다. 결국 예산권을 쥔 기재부의 승인 없이는 최 씨 관련 사업이 광범위하고 힘 있게 추진되기가 불가능했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최 전 부총리는 안 전 수석과 함께 ‘미국 위스콘신 라인’으로 분류되며, 본인의 이름을 딴 ‘초이노믹스’ 경제정책까지 나올 정도로 현 정권의 실세로 꼽힌다.
댓글 0